<2012-04-01 월간 제742호>
[4-H 강단] 21세기 청소년정책의 방향과 기조 ②

배 규 한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지금 왜 청소년정책이 특별히 중요한가?

□ 사회환경 근본적으로 바뀌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사회든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나 범위, 폭과 깊이는 사회마다 또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유난히 사회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광범위하며, 그 폭과 깊이가 큰 시대를 문명사적 전환기 또는 사회적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라고 한다.
B.C. 10세기 경의 농업혁명, 18세기 중엽의 산업혁명에 이어 20세기 후반 이후 인류는 다시 한 번 문명사적 전환기를 겪고 있다. 컴퓨터로 대표되는 정보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지적(知的)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사회적 패러다임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무엇보다 우선 사회의 형성이나 유지에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커뮤니케이션 유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정보기술은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방식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과 활동이 가능한 ‘사이버공간’을 창출해 내었다. 이 공간에는 신이 창조하고 인간이 살아온 ‘실제 공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으며, 실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활동을 이 안에서도 할 수 있다. 그 공간을 채우는 내용물들은 오히려 우리가 실제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고 풍성하다.
이러한 거시적 변동의 추세는 사회적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환경을 질적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특히 사회화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의 성장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그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이 청소년들의 성장환경에 미치는 주요한 영향은 다음과 같다.
먼저, 청소년들의 생활에서 사이버공간이 일상화되면서 대부분 활동이 실시간화 되고 있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전까지 상호작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던 모든 인습적 신분이 소멸된다. 누구나 익명으로 만나지만, 이러한 익명성이 상호작용을 어렵게 하거나 왜곡시키지는 않으며, 오히려 아무 거리낌 없는 주체적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적으로 정보의 엔트로피가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생산되는 정보의 양도 많지만 유통량이나 그 속도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빨라졌다. 이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기억하거나 자신의 공간에 소유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교육의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식의 내용을 전수하는 것보다, 필요한 지식을 찾아내어 종합하고 정리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일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사회성원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 변해
급격한 정보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성장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함에 따라 21세기 청소년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이 크게 달라졌다. 우선 가치관의 변화추세를 보면, 과거에는 경제적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데 비해, 최근 청소년들은 오히려 문화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사회적 의식에서도 물질적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비물질적 생태환경주의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뉴미디어의 보급과 더불어 개인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했을 뿐 아니라, 집단이나 공동체 보다는 개체를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과거에 흔히 강조되던 공동체의식이 약화된 반면, 개인 간의 관계(relationship) 의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는 당연히 행동양식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20세기 후반 세계를 지배하던 이념적 지향이 급격히 퇴조하면서, 특정 이념에 몰입되어 맹목적으로 행동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이념 또는 혼합이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권위에 복종하고 추종하던 일원적 권위주의가 붕괴되고, 다원적이며 자율적인 행동양식이 보편화되었다.
과거 혈연, 지연, 학연 등 갖가지 연고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던 양식도 크게 약화되었다. 연고나 지역 공동체의 영향력이 사라진 자리에는 관심과 취향에 따라 형성되는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행위의 준거가 나타나고 있다. 국가라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던 시민적 행위도 전 지구적 차원 또는 인권적 차원의 행위로 대체되어 간다.
많은 사람들은 요즘 청소년들에게 참으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급속한 사회변화 과정에서 과도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적응의 어려움을 더 크게 겪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세대가 과거의 가치관과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아주 못마땅하게 보이는 측면도 있다. 오늘의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성장하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성세대가 과거의 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비해, 청소년들은 이미 미래의 공기를 호흡하며 미래사회에 적응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살아갈 미래사회의 구조는 과거와 질적으로 전혀 다른 모습이며, 따라서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관이나 행동양식도 산업 세대와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청소년들에게 과거의 가치관이나 행동양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살아갈 사회는 기성세대가 살아 온 사회와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에게는 못마땅해 보일지 모르는 이러한 청소년의 모습이 오히려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갈 국가발전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청소년 미래 열어갈 인재
흔히들 청소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청소년이 미래를 책임질 세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지금 바로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청소년들의 자율성과 참여를 높이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정책적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청소년의 진정한 사회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제반 사회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21세기는 고령사회이고, 핵가족은 어떤 형태든 다른 모습으로 대체될 것이며, 교육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탈학교’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대부분 구성원들은 일에 매몰되기보다 자아실현을 추구하며, 자신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거주와 일을 바꾸는 현대판 유목민의 특성을 보이게 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세계는 급속히 글로벌·유비쿼터스 사회로 변모하고 있으며, 놀랍게도 한국은 그 선두에 서 있다.
사회가 급격히 변할수록 청소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우선 청소년은 눈부시게 발달하는 정보기술을 가장 잘 따라갈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첨병이기 때문이다.
둘째, 청소년은 복잡한 컴퓨터 네트워크 속에서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는 네트워크 사회의 가장 유능한 정보원이다.
셋째, 수없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부딪치는 지구촌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외국인들과 상호작용하고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글로벌 시대의 개척자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바로 청소년들이다.
넷째,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청소년들이야말로 사회적 활력을 높일 수 있는 고령사회의 발전 동력이 될 것이다.

청소년정책의 바람직한 방향과 기조

□청소년정책 목표 국가차원 발전
좋은 정책은 시대적 배경과 대상의 특성, 그리고 사회 환경 변화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정보화’의 물결은 초기에는 생산방식이나 생활양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으나, 어느 사이에 개인의 가치관이나 사회제도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새로운 언론제도가 형성되고, 여가·오락제도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가족과 학교 제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는 기존의 사회화 과정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청소년의 사회화 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새로운 사회화 기제(mechanism)를 모색하는 일이 중요하다.
청소년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히 청소년들을 보호하거나 복지를 통해 그들의 삶의 질적 수준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단순히 즐겁고 만족한 생활 또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려는 것만도 아니다. 정책이란 개개인의 삶에 관심은 가지되, 궁극적으로는 국가적 차원의 발전을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 정책 또한 궁극적으로는 청소년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청소년을 통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다음호 계속〉

※ 위 글은 2012 청소년정책방향 정립을 위한 대토론회 기조강연 내용으로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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