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1 월간 제742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안경은 윗사람 앞에서 쓰면 안 된다?
1882년(고종 17년)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냈던 독일사람 묄렌도르프가 조선에 처음 왔을 때의 일이다. 그는 청나라의 정치가 이홍장의 소개로 왔는데, 청나라를 떠나기 전에 이홍장이 묄렌도르프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예의 갖추려 안경 벗어

“조선에 가셔서 왕을 뵈면 먼저 큰절을 세 번 하십시오. 그리고 왕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안경은 미리 벗은 채 들어가셔야 합니다.”
묄렌도르프는 조선에 와서 이홍장의 충고를 잊지 않았다. 고종을 만나러 가기 전에 안경을 벗고, 높은 자리에 앉은 고종에게 큰절을 세 번 올린 것이다. 그러자 고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묄렌도르프에게 답례를 했다.
고종은 독일 사람인 묄렌도르프가 안경까지 벗고 정중하게 절을 하자 마음이 흐뭇했다. 이처럼 예의를 잘 지키는 외국인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고종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묄렌도르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눈이 안 보여 답답하실 텐데, 안경을 쓰도록 하시지요.”
고종은 묄렌도르프에게 안경을 쓰라고 허락했다. 그러나 묄렌도르프는 말을 듣지 않고 더듬더듬 조선말로 이렇게 말했다.
“저를 이 나라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는 마음을 다하여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이 인사말은 전날 밤에 조선의 관리에게 배워서 밤늦게까지 연습해 둔 것이었다. 고종은 가슴이 찡했다.
“고맙소. 나를 위해 우리말로 인사까지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구려.”
고종은 묄렌도르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가 물러갈 때도 일부러 일어나 그를 배웅했다. 묄렌도르프는 안경을 벗고 예의를 차린 덕분에 고종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9년 뒤, 고종을 만나러 온 일본 전권 공사 오이시는 안경을 버젓이 쓰고 있어서 고종에게 미움을 받았다. 고종은 그 자리에서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지만 불쾌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다른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이시가 물러간 뒤 긴급회의를 열어 오이시를 성토하고는, 일본 정부에 정식으로 항의문을 보냈다. 일본 전권 공사가 조선을 얕보고 왕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고 말이다.
일본에서는 항의문을 받고도 아무런 사과가 없었다. 그러자 신하들은 고종과 오이시 사이에서 통역을 한 현영운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멀리 귀양을 보내 버렸다.
조선에서는 윗사람 앞에서는 아랫사람이 안경을 벗는 것이 예의였다. 묄렌도르프는 안경을 벗음으로써 예의를 지켜 호감을 얻은 반면, 오이시는 안경을 벗지 않아 예의를 어겼다고 미움을 받았던 것이다.
순종은 아버지 고종에게 예의를 차리느라, 눈이 몹시 나빠도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의 여성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왕위에 오르기 전의 순종을 만나보고 이렇게 썼다.

예법상 눈 나빠도 안경 못 써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체질도 약해 보이고 비만형이었다. 게다가 눈도 몹시 나빴는데, 예법상의 문제 때문에 안경조차 쓰지 못한다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었다.”
비숍이 지적한 대로 순종은 고도 근시였다. 사물이 흐릿하게 보여 누가 부축해 주지 않으면 걷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순종은 웃어른인 고종이 있어 안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종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수 높은 안경을 말이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안경은 시력이 약한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발명되었다면서요?

안경은 1280년쯤 이탈리아에서 발명되었다. 피사의 살비노 아르마토는 빛 굴절 실험을 하다가 시력이 약해졌는데, 시력을 회복하려고 유리 만드는 일을 하여 교정용 렌즈를 발명했다. 이것이 최초의 안경이다.
그 무렵 이탈리아의 작가 산드로 디 포포조는 ‘가족의 행동에 관한 논문’을 썼는데 ‘시력이 약한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최근에 안경이 발명되었다’고 기록했다.
이때의 안경은 노안용 볼록렌즈 안경이었고, 16세기 중엽에야 근시용 오목렌즈 안경이 개발되어 17세기쯤 널리 보급되었다.
한편, 1280년 이전에 중국에서 이미 안경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설도 있다. 1270년경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갔을 때 중국인들이 안경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인들에게 안경의 유래에 대해 묻자, 중국인들은 “안경은 11세기쯤 아랍에서 발명되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안경이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기록이 없다. 다만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심유경과 일본인 중 현소가 안경을 써, 나이가 많아도 글을 잘 읽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래서 선조 임금이 안경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안경이 임진왜란 전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경은 윗사람 앞에서 써서는 안 된다고 해서 오랫동안 보급되지 못하다가, 17세기에 와서야 널리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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