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01 월간 제740호>
매화골 통신 (24) 귀향·귀촌·귀농이 늘고 있다

- 또 한 해가 시작되고 -    이 동 희 / 소설가

"이 고장으로 귀농을 하여 온 사람들이 많다.
영동군 11개 읍면에 350가구
정도로 해마다 늘고 있다."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맑아야 좋다고 한다. 눈이 펑펑 내리는 시골 마을 풍경이 평화롭다.
눈이 오는 마을을 한복을 입고 두루마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더듬더듬 걸어가 세배를 하는 모습,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이다.
설에 또는 겨울에 눈이 많이 와야 그해 가물지가 않다는 것이다. 둥그런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더욱 좋다. 좋다는 것은 풍년이 든다든지 액이 없게 된다든지 하는 것을 말한다.
설에 눈이 왔다. 산간지방에는 많이 왔다. 비도 조금 왔다. 보름에 맑고 밝고 큰 달을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 다른 얘기이지만 상촌 흥덕리에 설보름이라는 마을이 있다. 우두령을 넘어 경상도(지례)로 가는 도계 마을이다. 설에 명일 쇠러 왔다가 눈이 많이 와서 갈 수가 없어 주저앉아 있다가 보름이 되어서야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를 오르는 산마을 앞에 설보름 마을 표석을 세워 놓았다. 근처 사람들은 설부리미라고 부른다.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다. 예년과 같이 1월 5일에는 노천리 대동회가 열렸다. 상 중 하리 사람들이 이날 10시 30분에 문화생활관에 모여 마을 총회를 열고 한 해 살림살이에 대한 예결산 보고, 사업보고 등을 하였다. 거기에 따른 질문과 설명이 있었고 그 외 몇 가지 얘기가 있었는데 지난 가을 마을 이사회에서 논의되었던 노래비에 대한 것도 있었다.
옛날에 불리던 마을 노래가 잊혀지기 전에 노랫말을 새겨 비를 세우자는 의견이었다. 가사와 곡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었다. 작사를 누가 하였느냐 작곡을 누가 하였느냐 울고 넘는 박달재 같이 유명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찬송가 곡조와 비슷하기도 하고…
전에 면에 근무하던 정원춘 씨가 노랫말을 지었고 작곡은 잘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 중에 나이든 사람들은 술이 들어가면, 뒷동산은 높이 솟아 뒤를 가리고…를 흥얼거린다고 하였다. 노래가 훌륭한지 어떤지 모르지만 기억 속의 노래를 보존하자는 것이었다.
대동회가 끝나면 각 마을 회관으로 가서 점심을 같이 먹는 것으로 이어진다. 거기서는 또 이장들이 모임을 주재한다.
그건 그렇고 이 고장으로 귀농을 하여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영동군 11개 읍면에 350가구 정도 되고 귀농인협의회 회원만도 100여명 된다.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닌지 모르지만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귀농에도 그 형태에 따라 귀농·귀촌 귀향의 구분이 있다.
다 도시에 살다 내려온 것을 말하지만 귀농은 여기 농촌에 와서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한다. 많든 적든 여러 가지 작목 중에서 농사를 지어 생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귀촌은 전원으로서의 농촌생활을 하는 것이다. 산과 물 맑은 공기 속에 안락한 시골 생활을 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없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귀향은 고향에 돌아와 사는 것을 말한다. 도시에 살다가 고향에 내려 와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 낙향이다. 여기에 속하는 사람 중에는 농사를 안 짓는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정년을 하고 연금을 받으며 고향 농촌에서 푸성귀를 가꾸어 먹으며 노후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고향에 내려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농군으로 새 출발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농민문학가 이무영(李無影)이 서울에 살다가 농촌(경기도 의왕 군포)으로 들어가서 농삿꾼이 되었다. ‘제1과 제1장’부터 농민의 얘기를 소설로 쓰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그는 이무영의 농촌행을 입향(入鄕), 향향(向鄕)이라고 쓴 적이 있다. 단순한 낙향이라기보다 의도적인 작가의식이었다는 것이다. 논문 얘길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귀농·귀촌·귀향의 구분에 하나를 더 추가해 보고 싶은 것이다.
영동군 귀농인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성보(59세)씨는 상촌 물한리 945-2 물한계곡에서 ‘은하수’ 팬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땅을 1650㎡ 사가지고 와서 2640㎡을 더 샀다. 4290㎡ 땅에 150㎡ 정도의 커피색 2층 벽돌집을 짓고 텃밭에 고추 산채를 재배하고 감 호두 나무를 심어 수확을 거두고 있다.
“이회장 같은 경우는 그러니까…”
귀향은 아니고 귀촌이며 귀농이라고 하였다.
“산채라면 뭐 치나물이라든지…”
“예, 치도 있고 곤드레를 심었지요.”
“정선 장에서 곤드레 비빔밥을 먹어보았었는데.”
“곤드레로 장아찌를 많이 해요.”
깻잎 장아찌같이. 그것으로 쏠쏠한 수입을 얻고 있었다.
9년 전 2003년에 내려온 조성보 씨는 육군 중령 출신으로 돈벌이가 안 될 때 농사를 생각했다고 했다. 70~80%는 도시에서 빈손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고 10~20%가 여유 있는 귀촌이고 10% 정도가 귀향이라고 하였다.
학산의 정중기(56) 씨는 포도(블루베리)를 재배하고 추풍령의 우찬홍(58) 씨는 요양원을 하고 심천의 박미란(56) 씨는 포도 농사를 짓는다. 부회장들이다.
매곡 옥전리의 전동태 씨는 야산 13만2000㎡을 벌목하여 토지 조성을 하였고 황간의 김강열 씨는 26만4000㎡에 농사를 짓고 있다.
“대기업 형식으로 가느냐, 자연을 살리면서 유기농을 하느냐.”
귀농인들의 생각이 다 같지는 않지만 조성보 씨 같은 경우는 대농보다 소농 위주로 짓는 농사를 지향한다. 농촌에 살고자 내려온 사람들이 경제적인 의미를 뗄 수는 없다. 맘먹기에 따라 방법 여하에 따라 돈은 얼마든지 벌 수가 있다. 그러나 사는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
귀농인 모임에서는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외부 인사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기도 하며 부단히 충전하고 농민수업을 한다. 지난 12월 22일에는 영동군농업기술센터에서 총회를 열어 귀농인들이 다 모였다. 1월 31일에 영동 향군회관에서 모임이 있고 2월 16일에는 총회가 있다고 한다.
농사란 무엇인가, 농민이란 무엇인가. 마을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머리가 수그러진다. 욕심 부리지 않고 느릿느릿 사는 사람들에게서 도시인들의 조급증과 끝없는 탐욕에 대한 부끄러움을 배운다.
‘보리양식 떨어지자 방귀질 난다’는 말이 있다. 보릿고개 시절 얘기인데 이제 뭔가 될 것 같은데 시간이 다 된 것 같다. 아쉬움도 필요하리라.

한 해가 또 시작되었다. 지난 1월 5일 매곡면 소재의 노천리 상·중·하리 동민들이 총회를 열고 지난 해 살림살이의 결산과 새해 사업계획을 의결하였다. 대동회가 끝나면 각 마을회관으로 가서 같이 식사를 하고 또 회의를 한다. 마을 체제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노천리 대동회에 모인 마을 사람들, 영하의 날씨라 잔뜩 껴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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