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모든 권력이 왕에게서 나오는 전제 군주 국가였다. 그렇다고 해서 왕이 모든 일을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라에는 왕의 독주를 막으려고 사간원, 사헌부 등의 언관 제도와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사관 제도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잘못을 간하는 사간원 등과 더불어 왕을 아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사관들이었다. 이들은 왕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기려고 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것이다.
두 명의 사관이 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는데, 한 사람은 왕의 말을 기록했고, 다른 한 사람은 왕의 행동을 기록했다. 먹물통과 종이를 갖고 다니며 귀에 꽂은 붓을 들어 왕의 말과 행동을, 그리고 신하들의 사사로운 발언 내용까지 재빨리 받아 적었다.
1404년(태종 4년) 2월 8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사냥을 좋아하는 태종은 노루 사냥에 나섰다. 그는 노루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았다. 그런데 너무 서두르다가 그만, 말이 거꾸러지며 그도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태종은 몹시 창피했나 보다. 몸을 일으키며 신하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사관이 모르게 하라.”
하지만 사관이 이 일을 놓칠 리가 없다. 사관은 철저히 취재를 하여 “이 일은 사관이 모르게 하라”는 태종의 말까지 실록에 기록한 것이다. 늘상 이런 식이었으니 왕은 감시당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1401년(태종 1년) 7월 8일에는 또 이런 일이 있었다. 태종은 신하들과 편전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사관 민인생은 문 밖에 숨어서 이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태종은 민인생을 발견하고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몰래 숨어서 내 말을 엿들어? 참으로 음흉스럽구나. 지난번에는 내가 매 사냥을 떠났을 때 얼굴을 가린 채 나를 미행하더니….”
태종은 노발대발하며 민인생을 멀리 귀양 보냈다. 사관들은 왕뿐만 아니라 관리들에게도 수모를 당했다. 따귀를 맞거나 발로 걷어차이기도 했다. 사관들이 보고 들은 것을 하나라도 더 기록하려고 애쓴 것은, 그 시대의 역사를 빠짐없이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사관들이 그날그날 기록한 일기를 ‘사초(史草)’라고 하는데, 사초는 실록을 편찬할 때 자료로 사용된다. 왕이 죽으면 사관들은 사초를 바탕으로 실록을 완성한다. 그리고는 세검정 냇가에서 사초 원본을 깨끗이 물에 빨아 없앤다. 사초를 따로 보관하지 않는 것은, 뒷날 당파 싸움에 악용되는 등 말썽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그날 기록한 내용인 사초는 사관 말고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왕조차도 그것을 볼 수 없었다. 이처럼 비밀을 요하는 기록이었기 때문에, 사초는 사관들이 각자 집에 보관했다. 그랬다가 실록을 편찬할 때 사초를 실록청에 제출했다. 실록이 완성되더라도 왕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태종실록’이 완성되었을 때 세종은 이것을 보려고 했는데, 맹사성 대감이 “왕이 실록을 보면 사관들이 후환이 두려워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하지 못한다”고 반대했다. 이에 세종은 결국 ‘태종실록’을 보지 못했다. 왕은 물론 누구에게도 ‘사초’와 실록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사관들로 하여금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관들이 이처럼 철저히 기록한 덕에, 조선 왕조 25대 472년의 역사는 조선왕조실록 1893권 888책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역사를 빠짐없이 정직하게 기록하여, 세계에 자랑할 만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꼽히고 있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사관들은 왕도 거침없이 비판했다면서요?”
‘조선왕조실록’에는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논평도 달아 놓았다. ‘사신(史臣)은 논한다’하면서, 왕과 대신들의 말과 행동, 인물평까지 했다. 사관은 중종이 세상을 떠난 날, 중종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왕(중종)은 인자하고 유순한 면은 있으나 결단성이 부족하여, 일할 뜻은 있었지만 해 놓은 일은 별로 없었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하지 않고, 어진 사람과 간사한 무리를 뒤섞어 등용했기 때문에 재위 40년 동안 혼란할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조금도 안정을 이루지 못했으니 슬프도다.”
사관은 왕이라고 해서 봐 주는 법이 없었다. 잘못이 있으면 거침없이 비판하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대신은 물론 왕의 허물까지도 거침없이 기록되었다. 따라서 후대에 어느 사료보다 공정하고 신빙성이 높은 실록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 때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의 역사를 각 왕별로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1997년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중국 실록인 ‘대청역조실록’이 296년, ‘황명실록’이 260년으로, 472년이라는 역사 기록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조선 시대 모든 분야의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어 매우 귀중한 기록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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