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청 수 회원 〈충남 서천 서면중학교 2학년〉
우리는 우리의 끝과 처음이 어디인지를 망각한 채 처음에 주어진 것과 베푸는 것마저도 삼켜 버리고 있다.
“우리는 항상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도움을 받고 있다. 물론 우리가 잘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6월 24일인 오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음식을 먹고, 물이 있어서 씻을 수 있었으며,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천으로 만든 교복이 있어서 학교에 가도 아무 일이 없었고,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침에는 은은한 물안개가 낀 상쾌함이 나를 생기 있게 해주었으며, 나무에 스친 바람은 나를 시원케 해주었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름과 봄 사이의 상큼함 또한 나의 아침을 기분 좋게 해주었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렇게 많은 혜택이 있다. 우리가 생각을 다시 한다면 우리 주위의 알아차리지 못한 혜택은 우리 가까이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자연은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베풀어준다.
우선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알듯이 자연은 의식주를 제공해 준다. 자연은 우리에게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운 경관을 주고 항상 우리의 마음을 푸르게 해준다. 또한 산소 원자마저도 조금 밖에 없어 이산화탄소가 가득했던 옛날,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 냈고, 오존이 발생해 오존층이 생겼다고 한다.
그 말은 곧 나무가 없었다면,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우리도 없었을 것이라는 거다.
즉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이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우리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고 있다.
우리는 부모님과 같이 아낌없는 혜택을 주는 자연에게 보이지 않는 혹은 보이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이 모종의 불효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쓰레기를 버리고, 나무를 꺾었다.
지금은 자연을 도와주는 생물들을 죽이고, 어른이 되어서는 배기가스를 내뿜는 차를 운전하며, 일회용품을 수도 없이 사용한다.
더욱이 필요 이상으로 나무제품과 전기를 많이 사용할뿐더러 자연에 해가 되는 것들을 사랑할 정도로 옆에 두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들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상이 더욱 커졌고, 그나마 그런 사상이 희박했던 동양에까지 번지면서, 거의 전세계 사람들이 자연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그 여파로 우리는 많은 동식물을 죽이고, 삼림을 훼손시켰다.
우리는 자연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이 아닌 소지품으로 보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을 괴롭히고, 마치 일회용품처럼 취급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좋지 않은 행동인지조차도 모를 때가 많다. 그런데 나는 여태껏 우리가 보기에 부정적인 것만을 말해 왔다.
한편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내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가슴 깊숙이 찔러놓은 곳에서 무언가가 뜨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숲을 위해 해 준 것은 무엇인가?
고작 하이브리드 자동차 만들기, 작은 묘목심기 정도 밖에 더하였는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우리가 400만년동안 자연의 보살핌을 받아왔는데, 우리는 근래부터 철이 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아직 자연이 주는 충만함을 갚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다. 그러므로 아까 말한 것과는 모순일지도 몰라도 나무심기처럼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진취적인 자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물론 일회용품도 줄이고, 자동차가 아닌 대중교통 수단과 자전거를 이용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이 모두를 실천하기는 어렵겠지만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전기 아껴쓰기와 같은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자연, 어느 사람들은 자연을 개척지라고 하지만 어느 사람들은 자연을 우리가 지켜나가고 보존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자연을 한번 해치는 것을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에 비유한다면 지구의 모든 나무는 푸르름을 오래 전에 잃고, 뿌리마저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의 무한한 혜택을 보존하고 아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