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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1 월간 제73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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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골 통신 (21) 결명자차 한 줌 타작 |
- 들깨도 떨고 - 이동희 / 소설가
"천성적으로 농삿군들은 자기가 심어 거둔 것을
먹지 다른 집에서 사먹지 않는다. 한 가지라도
덜 심으면 그만큼 아쉽고 양념이 덜 된다."
추수의 계절이다. 모든 곡식 생물들을 거두어야 한다.
부지런히 해야 서리를 맞히지 않고 눈 오기 전에 광 속에 넣어 놓을 수 있다. 뭐 검은 콩 서리태는 서리를 맞혀 거두기도 한다.
집집마다 몇 가지가 되는 잡곡 타작을 하고 있다. 참깨 들깨 콩, 콩도 메주를 하는 흰콩과 그보다 훨씬 몸에 좋다는 값도 많이 나가는 검정콩 녹두 수수 조 등 가지수가 많다. 그것을 오로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농가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지수를 줄이고 대량생산을 해야 맞지만 하다 보면 그렇게 안 된다. 밭둑에도 심고 간작을 하기도 하고 밥에 놓아 먹기도 하고 떡도 해 먹기 위하여 양대도 심고 동부도 심고 먹을 만큼 들깨도 심고 참깨도 심는다. 검은 참깨 시금자는 금가루다.
주로 밭 곡식이지만 들이 다 한 데 붙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밭마다 조금씩 무엇을 심게 된다. 집 안 담 위 아래로 호박 심고 좀 습한 곳에는 토란을 심는다. 초가지붕이 아니라도 박도 심고 수세미도 심는다.
가을에 거두어야 하는 것만이 아니고 봄부터 따지면 참으로 가지수가 많다. 옥수수 토마도 오이 가지 고추 파 마늘 상추 고구마 감자 땅콩 뭐 이름을 다 댈 수가 없다. 아무리 가지수를 줄인다 해도 열 가지 아니 스무 가지가 된다. 천성적으로 농삿군들은 자기가 심어 거둔 것을 먹지 다른 집에서 사먹지 않는다. 한 가지라도 덜 심으면 그만큼 아쉽고 양념이 덜 된다.
김장은 어떤가. 배추만 심고 무는 안 심을 수 있는가. 알타리무는 안 심을 수가 있는가. 갓은 어떤가. 자기가 심어서 자기가 먹는 것이 편하고 맛이 있다. 말하자면 웰빙 식단이다. 그런 데에 익숙해 있다.
배추는 하얀 알이 차 오르도록 묶어주어야만 한다. 묶는 것은 다른 끈보다 짚이라야 한다. 벼를 벨 적에 짚을 쓸 수 있도록 주문해야 한다. 짚을 사료 등으로 쓰기 위해서 따로 둥쳐 놓는다. 그 허연 비닐 둥치가 들판 여기 저기에 뒹굴고 있는 것이 신풍경이지만 거기서 짚을 한 단 빼내기도 쉽지 않다. 그건 그렇고 배추 알이 많이 든 것은 짚을 두 개 이어서 묶어야 한다. 계속 엎드려서 뭘 하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엉덩이에 깔고 앉는 것을 달고 한다. 끈이 달려 있다. 그것을 뭐라고 하더라? 값은 3000원 정도.
그의 경우 한 가지 더 심는 것이 있다. 결명자차(決明子茶)이다. 이 동네에서는 별로 심는 집이 없는 것 같다. 콩과 같이 다 익으면 베어서 타작을 하면 된다. 그러나 콩타작을 할 때같이 땅바닥에 대고 쳐서는 안 되고 신문지라도 깔고 떨어야 한다. 알이 아주 작아서 주어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들깨나 참깨보다 더 잘지는 않다. 동부같이 생겼는데 아주 가는 모양을 생각하면 된다. 새끼 손가락보다 가늘다. 콩과가 아니고 차풀과 식물이다. 노란 꽃이 피고 이파리는 아카시아 같이 생겼다. 화부차라고도 한다. 간열 눈병을 고치고 코피를 멎게 하는 데 좋다고 한약재로 쓰이고 볶아서 차를 닳여서 먹는다. 그냥 눈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심는다고 해 봐야 한 두 평인데 얼마 안 되지만 풀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나약한 줄기가 억센 풀 속에 버티기가 힘들다. 매일 풀을 뽑고 할 수 없이 비료도 준다. 금년에는 풀을 제대로 못 뽑아줘서 영 시원치가 않았다. 수확이 한 줌이나 제대로 될까 모르겠다. 그러나 잘 떨면 내년에 씨앗을 하는 것은 충분하다. 작년에 많이 열려서 아직 먹을 것은 있다. 볶아서 빈 커피 병에 가득 넣어둔 것이다. 그만하면 내년까지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깊은 맛은 없고 팥 삶은 물 같은 구수한 것인데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다.
그는 시골 그의 집에 멀리 오는 손님에게 그것으로 차 대접을 한다. 늘 마시는 커피나 녹차보다 이것을 내놓는다. 주전자에 티수푼으로 하나 정도 넣고 끓이고 두 번 세 번 물을 부어 달이면 불그스레한 색의 차가 된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찬 것으로 마시기도 하고 감초 썰은 것을 두 세 개 넣기도 한다. 그래봐야 별 맛은 아니고 약간 쌉살한 단맛이 느껴진다.
“내가 재배한 것인데 한번 들어봐요.”
그러면 모두들 기대를 가지고 그 연한 포도주 같은 차를 음미하며 마신다.
그럴 때 그가 다시 한 마디 한다.
“무엇인지 맞혀 봐요.”
그러면 또 무슨 차다 무슨 차다 하고 저마다 이름을 댄다. 구기자다 두충차다 뭐다 뭐다 하고 맞히지를 못한다. 감초를 넣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할 때 왜 그런지 유쾌하고 호기가 있다.
“화부차라고 결명자라기도 하고……”
그러면 모두들 아아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눈에 좋다고 한다고 하면 정말 그렇다고 하며 마신다. 그러나 영 찻잔에 차가 줄지를 않고 갈 때 보면 다들 남겼다. 당기는 맛은 없는 차이고 그것을 보리차처럼 옥수수차처럼 끓여 먹기도 한다.
그가 이 차를 심고 장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오래 전에 미당(未堂) 선생 집을 찾아가 뵌 적이 있다. 시를 배우고 있던 오하(梧下)를 따라 공덕동 소슬대문집에를 갔었는데 선생은 그 때 우리에게 이 차를 내놓으며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눈에 선하다. 아마 모시나 한복 차림이었던 것 같다. 그 차 맛은 참 인상적이고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다. 지금 그가 적은 대로 직접 심어서 그 생각을 하며 우린다. 오하와 교직 친구들 내외가 같이 먼 길을 찾아왔을 때도 이 차를 내놓았었다. 차맛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때 그 여유 있어 보이던 중년 시인의 기개가 텁텁한 화부차 맛에 담겨 있다. 고창에 문학관을 지을 때 가고 그후 조성한 넓은 국화밭에 가보지 못하였다.
“난 이 시 한 편이면 돼.”
그렇게 호기 있게 얘기하던 ‘국화 옆에서’는 그가 유일하게 암송하는 시이다. 그러나 늘 쫓기며 허덕이며 살고 있다. 노란 꽃술의 국화가 많이 피어 있다.
집집마다 두 그루 씩은 있는 감나무에 빨갛게 감이 달려 있다. 이파리는 하나도 없어 보기가 좋다. 그러나 보기 좋으라고 감을 안 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손이 자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들에 심은 것은 다 따고 집 안에 있는 것은 틈틈이 따는데 도무지 틈이 나지 않는다. 감을 따는 장대가 요즘 파는 것이 나왔다. 장대 끝에 손처럼 만든 기구가 있어 땡감을 떨어뜨려서 깨뜨리지 않고 홍시도 까딱 없이 딸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도 물론 사람 손이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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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저 집에서 참깨 들깨 콩 등의 타작이 한창이다. 벼를 베어 말리는 것 다음 차례다. 벼 타작과 달라서 이런 잡곡들에 대하여는 아직 기계로 하지 않고 재래식으로 하고 있다. 이 마을의 경우다. 도리깨로 들깨 타작을 하는 82세의 임차영 할머니. 나이를 묻자 이제 셋 올라간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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