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01 월간 제737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귀신을 무서워하는 순검
1894년(고종 31년) 7월 14일, 조선 정부는 갑오개혁을 실시하여 신식 경찰 제도를 마련했다. 그에 따라 종래의 좌·우포도청을 합하여 경무청을 만들어 서울의 경찰 사무를 맡아 보게 했다.
경무청에는 최고 책임자인 경무사가 있고, 그 밑으로 경무관, 총순, 순검 등의 직원이 있었다. 순검은 오늘날 순경과 비슷한 관직으로 총순의 지휘를 받아 관내 주민의 피해 예방, 건강 보호, 국법을 범하고자 하는 자를 은밀히 탐지·체포하는 일, 죄인 호송, 고위 관리 경호, 감옥 사무 등을 맡아 보았다.
순검은 건강하고 단정한 23세에서 40세까지의 사람 중에서 시험을 거쳐 선발했다. 그런데 면접시험을 치를 때는 이런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귀신과 호랑이 제일 두려워

“귀신을 무서워합니까, 호랑이를 무서워합니까?”
이때 귀신도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사람만을 순검으로 뽑았다.
이런 질문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 백성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황당하게도 귀신과 호랑이였다. 조선 경찰의 고문을 맡고 있던 스트리 프링은 “조선 경찰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국민들을 귀신과 호랑이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니 귀신과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을 순검으로 뽑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호랑이 사냥을 많이 한 포수를 순검으로 특별 채용하기도 했다.
면접시험에서는 귀신도 호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지만, 순검들은 여전히 귀신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귀신이라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어찌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경무청에서 무당들을 집중 단속할 때 그대로 드러났다.
단속에 나선 순검들은 무당 집에 가서 귀신의 화상을 불태워야 했다.
무당들이 섬기는 귀신의 화상을 불태우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순검이 귀신의 화상을 불태우려 하면 무당들은 길길이 날뛰며 저주의 말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귀신아, 저 못된 순검의 머릿속에 옮아붙어라! 시커먼 뱃속에 옮아붙어라!”
그러면 순검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들 또한 귀신의 존재를 믿고 있기에, 귀신의 화상을 불태우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렸다.

주업무는 무당 집중 단속

무당들은 순검이 귀신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병들어 눕거나 앓다가 죽은 순검이 있으면 이런 소문을 퍼뜨렸다.
“감히 귀신의 화상을 불태워 버려? 귀신이 노하여 벌을 내렸지. 귀신이 옮아붙어 그런 꼴을 당한 거야.”
무당 집에서 귀신이 무서워 도망쳐 나온 순검들은 상관인 총검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무당이 섬기는 귀신의 화상을 불태워 없앴습니다.”
그러나 무당이 버젓이 활동을 계속하는데 이런 거짓말이 어디 오래 가겠는가? 나중에 허위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총검은, 귀신을 무서워하는 순검들을 모조리 파면시켰다.
거짓말도 잠깐의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진실을 드러나게 마련인가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황당한 일이지만 봉건사회에서 근대로 바뀌는 그 시대에는 있을 법한 이야기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조선 사람들은 귀신, 호랑이보다
일본 순사를 더 무서워했다면서요?”

1907년 경무청·경무서가 경시청·경찰서, 경무관·총순·순검이 일본식인 경시·경부·순사로 바뀌고, 순사 주재소에 일본 순사가 근무하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경상도 거창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산골에 사는 김신섭이라는 사람에게는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어느 날 학질에 걸려 버렸다.
그는 아들의 몸에 붙은 학질 귀신을 떼어 내려고, 참봉 댁에 가서 이런 부탁을 했다.
“참봉 어른, 학질 귀신은 놀라게 해야 몸에서 떨어진다면서요? 학질 귀신이 놀라 달아날 내용의 글을 몇 자 적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 글이 적힌 종이를 아들 녀석의 이마에 붙이겠습니다.”
참봉은 알았다면서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거창 경찰서 안의 주재소 순사 후루카와 곤베’
참봉은 일본 순사가 귀신보다 무서운 존재이기에, 학질 귀신도 순사라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날 줄 알았던 것이다.
일본 순사는 조선 사람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주재소로 끌고 와 잔혹한 고문을 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본 순사라는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려 부리나케 달아났고,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쳤다. 일제 강점기에는 무서운 사람인 순사의 이름을 적어 돌림병의 귀신을 쫓으려는 풍습이 남도 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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