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몰래 감춰둔 꿀단지를 꺼내보자!
달달한 에너지가 필요한 11월이다.
한겨울처럼 춥지는 않으나, 시린 찬바람이 만만치 않다. 마음까지 허해졌기 때문일까? 그지없이 쓸쓸하다.
얼마 전 양평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지인의 집에 갔었다. 텅빈 논 자락 끝으로 붉게 물든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왔다.
이럴 때는 달콤한 케이크 같은 책을 읽어야 한다. 마음에 위로의 에너지를 더해줘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고른 책이 동시집 ‘달콤한 내 꿀단지’(조두현 지음 / 섬아이 펴냄)이다.
동시집이라고는 하지만 어린이들만 읽는 책은 아니다. 어린이들은 물론 성인들까지 세대를 아울러 읽을 수 있고, 읽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이 동시집에는 한 아이가 살고 있다. 아이의 별명은 곰이다. 사람들은 아이가 ‘무거운 짐 나를 때는 칭찬하다가 작은 잘못에도 미련한 곰’이라고 퉁바리 놓기도 한다.
그럴 때 아이는 서운함을 느낀다. 또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억지로 수영을 배우면서도 날렵한 물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내 별명’)
과일 가게 앞을 지나던 아이는 둥글둥글 제각기 다른 과일을 보면서 같은 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울퉁불퉁 모과에서는 화난 선생님 얼굴이 떠올라 킥킥 웃기도 한다. (‘과일가게’)
아플 때 끙끙 앓으면서도 “PC방 몰래 간 거랑 / 짝을 골탕 먹인 거랑……” 자신의 잘못을 떠올리며 후회하는 순진함도 지니고 있다. (‘아픈 날’)
아이는 웃을 때마다 다글다글 장난기를 쏟아낸다. 어떻게 놀면 더 재미있나 궁리하며 까불어 댄다.
짓궂던 아이가 조금씩 달라진 것은 그 애의 전학 이후다.
“그 애가 전학 오자 / 교실 안에 해가 뜬 듯 / 내 마음 그쪽으로 / 한 뼘씩 자라나요. / 고개도 그 애를 좇아 / 자꾸만 돌아가죠. // 낭랑한 목소리도 / 깔깔대는 웃음도 / 씨앗처럼 알알이 / 내 마음에 깊이 박혀 / 스치는 그 애 눈길에 까맣게 익어 가요.” - ‘해바라기’ 전문
그 애를 마음에 담고, 아이는 자란다. 때로는 그 애와 말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리고 둘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비밀로 품는다.
“남몰래 찍어 먹어야 / 더욱더 달콤하다지. / 깊이 감춰 놓을수록 / 자꾸만 생각난다지. / 그 애와 / 단둘이 찍은 사진 / 그게 바로 내 꿀단지. // 생일날 친구들 몰래 / 찍어 놓은 폰카 사진. / 그 애 보고플 때마다 / 몰래 꺼내 들고는 / 눈으로 / 살짝 맛보는 / 달콤한 내 꿀단지.” -‘꿀단지’ 전문
하나의 비밀을 나눠 가진 두 친구. 아이와 그 애는 눈으로 살짝 맛보는 달콤한 꿀단지인 사진 한 장의 비밀을 나눠 갖고 성장해 간다.
“눈으로 살짝 맛보는 달콤한 꿀단지” 얼마나 감칠맛 나는 표현인지! 마치 한 장의 사진을 손에 들고 시를 읽는 기분이다.
둘 만의 사진을 간직한 두 아이는 이 일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까? 쉽게 잊을 수도 있지만, 그 시간 속에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된다.
아이는 아빠와 엄마 등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우리 가족 모두 함께 / 단풍놀이 즐기던 날. / 할머니 볼우물에 / 노랑 잎이 떠다닌다. / 왕년에 용강골 최고 미인 / 거짓말 아니었다. // 아빠 얼굴의 그늘도 / 말끔하게 지워지고 / 발그레한 엄마 얼굴 / 곱게 물든 단풍잎. // 간만에 데이트 하시라고 / 자리 피해 주었다.” - ‘단풍놀이’ 전문
단풍놀이를 간 날, 아이는 할머니의 환한 표정이 기쁘다. 엄마, 아빠가 느끼는 작은 행복에도 덩달아 신이 난다.
어리지만 아이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읽고 쓰다듬어 주는 능력을 지녔다.
이처럼 속내가 깊은가 하면, 가족 외식 때 즐겨 찾는 떡볶이 집에서는 마지막 한 개의 떡볶이에 아빠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떡볶이’) 이럴 때 보면, 천상 아이다.
따뜻함이 필요한 11월, ‘달콤한 내 꿀단지’를 읽으며 마음에 ‘행복 난로’를 켜는 것은 어떨까?
짧고 간결한 시편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지친 오늘을 견딜 위로를 건넨다. “괜찮아. 다 괜찮아.”하고 속삭인다.
시린바람에 쓸쓸해 지는 가슴을 달콤하게 달래줄 격려가 필요하다면, 바쁜 일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기쁨이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펴들고 천천히 음미해 읽어보길 바란다.
그러면 쓸쓸한 11월의 체온도 1도쯤 올라가지 않을까?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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