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들판에 서서 - 이동희 / 소설가
"날씨도 좋아야 하지만 농정도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
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의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가을 들판은 하루하루 누렇게 물들어 갔다. 추석이 지난 들판은 벼가 누렇게 익어 황색 물결을 이루었다. 벼 대신 포도를 심고 콩이니 배추를 심고 비닐하우스에 이것저것 재배를 하지만, 이 가을 들녘에 서면 온통 누우런 벼의 물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들 뿐이 아니었다. 농민이 8%이니 7%이니 하여 10% 이하로 줄어든 지가 오래 되었고 농지도 점점 축소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통계 숫자에 불과하고 가령 기차나 시외버스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면 질펀한 들판이 펼쳐진다. 지금 쯤 전국 어디서나 누우런 들판 벼의 물결을 볼 수 있다.
추수(秋收)하게 되면 벼를 베고 타작하는 것을 생각한다. 여러 가지 곡물이 있고 오곡백과를 다 거두는 것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벼의 수확이 대표적이다. 우리의 주식(主食)이 쌀이어서 그런지 모른다. 빵을 먹는 사람도 많고 여러 잡곡이 식탁에 오르지만 우리의 주식은 여전히 쌀이고 추수의 계절 가을의 전령사는 누런 벼인 것이다.
바야흐로 들판은 완전히 황색이 되었다. 가을들판 금빛물결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고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황금빛이기 때문인가. 황금이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그렇게 흐뭇한 것인가, 아니면 누렇게 익은 벼의 색깔로 금의 색깔을 만든 것 때문인가.
가을, 벼가 익는 황금들판,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농부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 있다면 익어가는 벼의 출렁이는 색깔일 것이다. 도향(稻香)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이름의 작가도 있지만 아직 농군이 못 되어 그런 향기는 느끼질 못하고 있다. 배동받이라는 것이 있다. 벼가 알 밸 무렵을 말한다. 그 때부터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옛날이야기인지 모른다. 적어도 이 고장 이 근방에서는 그렇다. 대부분 수입은 벼의 4배가 되는 포도 농사로 전환을 했고 2모작 3모작을 하는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어 벼의 재배 면적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들판 가득 벼농사를 짓던 그런 황금시절은 지나갔다. 카메라의 각도를 어떻게 잡아도 포도밭과 비닐하우스가 들어온다. 여기가 평택평야나 김제평야처럼 그렇게 넓지는 않아도 일망무제로 누우런 들판이 펼쳐졌던 것이다. 그 때가 좋은 때였는지 모른다. 많이 발전을 한 것인지 모른다.
벼농사가 얼마나 줄어들었는가 하는 것을 정미소가 얼마나 없어졌는가 하는 얘기로도 할 수 있다. 매곡면 소재지 노천리에 정미소가 세 곳이 있었는데 그중 두 곳이 없어지고 창고로 쓰고 있다. 들 가운데의 물레방아를 터빈으로 바꿔 운영하던 것도 없어지고 건너 마을 유전리()에도 정미소가 있었지만 없어진 지 오래이다. 그 윗동네 사리안의 어촌리(용촌) 개춘리 정미소, 이쪽으로 건너 와서 수원리(모른대) 내동(안골) 등 7, 8 군데 정미소들이 다 없어지고 노천리 정미소 한 군데만 남아 있다. 요즘은 트럭에 싣고 운반하므로 거리가 그렇게 문제 되지 않는다. 노천리로 와서 방아를 찧거나 임산 황간 김천으로 싣고 간다. 어떻든 노천정미소는 대단히 물량이 많다. 정미소를 운영하는 유병선 씨는 가을 벼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눈코 뜰 새가 없고 방아를 두었다가 먹을 때 찧기 때문에 일년 내내 바쁘다. 맡겨놓는 벼를 순서대로 찧어 차로 좁은 골목 집 안 마당에 까지 갖다 준다.
정미소까지 가지 않고 집에서 해결하기도 한다. 상구 이문세 씨 같은 경우 정미기가 있어서 때에 맞추어 찧어 먹기도 한다. 고추 건조장도 만들어 놓았는데 이웃 고추도 다 말려준다.
“내 것도 좀 말려 달라는데 그걸 어떻게 마다고 해야.”
“전기 값은 받아야지.”
“받을라만 많이 받아야 되는데.”
없는 공구가 없어 웬만한 것은 다 고쳐주기도 한다. 콤프레샤가 있어 자전거 튜브 바람도 넣어주고 무시고무-표준말인지 모르겠다-도 끼워준다.
그건 그렇고 이제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타작을 하게 된다. 벼를 베는 동시에 자루에 담아내기 때문에 타작이 따로 없다. 짚도 둥치로 둘둘 말아 놓는다. 도로 가에 벼를 말리는 작업이 남아 있는데 수매를 하기 위해 RPC라고 미곡종합처리장에 직접 갖다 주게 되는 경우는 그럴 필요가 없다.
추수를 하여 정미소로 싣고 가 방아를 찧거나 면으로 가져가 매상(공공 비축용 수매)을 하게 된다. 매상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50~70%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가격도 별 것이 아니다. 건조벼인 경우 40kg 포대에 작년의 경우 4만7000원 정도였다. 금년에 임시로 매겨진 가격도 그 정도였다. 나중에 정산하는 가격이다. 특등 4만8550원 1등 4만7000원 2등 4만4910원 3등 4만190원이다. 여기 가격이지만 전국이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벼는 콤바인에서 톤백(1톤 들이)에 넣은 것을 미곡종합처리장으로 가져가 말려서 수매를 하는 것으로 특등 4만7880원 1등 4만6330원 2등 4만4240원 3등 3만9520원이다. 건조비는 따로 주어야 한다.
정부에서 시가로 사서 시가로 파는 것이다. 얼마 전 시장 가격보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팔던 2중 곡가 제도는 WTO 세계무역기구와의 협약에 의해 시행할 수가 없고 쌀직불제라고 하여 가격이 떨어질 경우 임시가격을 정한 것에서 보조(85% 정도)를 하고 있다. 농민들은 목표가격을 계속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몇 년에 한 번씩 국회서 정하고 있다. 늘 추곡수매가를 놓고 국회서 야당 여당이 싸움박질을 하던 것을 시장논리와 정치논리 양쪽을 도입하여 절충을 하였다. 그리고 수입개방을 보류하는 대신 쌀을 30만톤을 들여오고 있다. 최소시장 접근 물량(MMA)이라는 것이다. 현미 상태로 들여오는 가공용 쌀 20만톤, 백미 10만톤이다. 막걸리니 떡이니 수입용 쌀로 만드는 것이 많다.
마을 얘기가 나라 얘기가 되었는데 금년에는 작황이 안 좋아 418만톤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작년 429만톤보다 떨어진다. 계속 풍년이라고 할 수가 없다.
요즘 날씨가 좋다. 일조량이 많다는 것이다. 날씨도 좋아야 하지만 농정도 잘 해야 한다. 무엇보다 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의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쌀미(米)자가 八十八을 쓴 것이라고 하여 88세를 미수(米壽)라고 한다. 농부의 손 여든여덟 번을 거쳐 쌀이 밥상에 오른다고 한다.
줄기만 하는 농민들의 어깨에 힘을 넣어주는 정치 행정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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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익어가는 노천리 핏들 물을 대는 물건너 들판, 포도 밭과 비닐하우스 창고들에 둘러싸여 벼의 재배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새를 쫓는 허수아비도 공을 들이지 않고 대충 비료 포대로 덮어 씌워 놓았다. 이제 콤바인이 들어서 벼를 베게 되고 정미소로 가서 방아를 찧거나 매상(공공 비축용 벼 수매)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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