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1 월간 제736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악한 양반 혼내 주기

1896년 10월, ‘독립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서울에 살며 감찰 벼슬을 지냈던 최 아무개라는 양반이 경기도 양주 땅으로 이사를 갔다. 그는 시골에 살면서도 양반이라고 세도가 대단했다. 걸핏하면 상민들을 잡아들여 하인들을 시켜 흠씬 두들겨 패기 일쑤였다.
때리는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가령, 마을 사람이 담뱃대를 물고 자기 집 앞을 지나가면 펄쩍펄쩍 뛰고 난리가 났다.
“네 이놈! 상민 주제에 양반집 앞을 담뱃대를 물고 지나가?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여봐라, 저 못된 놈의 버릇을 당장 고쳐 주어라!”
옛날에 상민은 양반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다. 담배 정도가 아니라 양반 앞에서는 감히 안경을 쓸 수도 없었다. 길에서 양반과 마주치면 양반이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어야 했다.
이렇듯 양반과 상민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 최 아무개와 같은 양반들이 횡포를 부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상민이 항의라도 하면 양반에게 감히 대들었다고 마을에서 쫓아냈으니, 상민들은 억울해도 꾹 참고 살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갑오개혁으로 신분 차별이 철폐된 지 2년이 지난 뒤였다. 그런데도 양반의 횡포가 그 정도였으니 그 이전에는 오죽 심했겠는가?
안동 김씨 등의 세도 정치가 한창이던 조선 후기에는, 권세 있는 양반집에 곤장, 태 등 형구가 잔뜩 있고 심지어 사람을 가둬 두는 감옥까지 있었다.
그래서 상민을 마구 잡아들여 하인들을 시켜 매질을 하고 고문까지 했는데, 관가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알아도 눈감아 주었다. 그러니 상민들만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하지만 상민들 가운데는 양반들의 횡포에 견디다 못해 ‘단치 넣는다’며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단치’는 사람을 넣을 수 있는 커다란 둥우리다. 그는 양반에게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짚으로 만든 단치를 들고 악한 양반 집으로 갔다.
그래서 그 양반을 잡아 단치에 넣은 뒤, “단치 났네, 단치 났네!” 하고 소리치며 강가로 가는 것이다. 강가에서는 단치에 커다란 바윗돌을 매달아 물속에 빠뜨렸으니 악한 양반은 꼼짝없이 물귀신이 되었다.
그 다음엔 마을에서 잔치를 열어 ‘단치 넣는다’에 처음 나선 사람을 위로해 주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 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며 관가로 자수를 하러 갔다. 관가에서는 양반을 죽인 죄를 물어 장터에서 참수형에 처했고 말이다.
그렇지만 관가에 자수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일을 저지른 뒤에는 대부분 마을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숨어 살았다.
양반들의 횡포가 오죽 심했으면 상민들이 이런 저항을 했을까? 상민이라고 해서 모두 눌려서만 지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겠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박지원의 ‘양반전’이라는 소설에서는 양반이 되면 좋은 점이 무엇이라고 했나요?”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다. 그는 ‘양반전’이라는 소설을 써서 양반의 무능력과 부패상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이 소설에는 양반을 산 부자가 군수에게 양반이 되면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군수는 그 대답을 대신하여 양반 문서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하늘은 네 종류의 백성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그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이 선비요, 곧 양반이라 한다. 양반은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글을 대강 익히면 크게는 문과에 급제하고 작게는 진사가 된다. 문과에 급제하면 홍패를 받는데, 크기가 두 자도 못 된다. 하지만 이것만 지니고 있으면 백 가지 물건이 생기니 누구나 돈자루라고 부른다. 진사는 서른에 첫 벼슬을 해도 이름이 나고, 장차 모든 벼슬을 할 수도 있다. 귀밑머리는 일산 바람에 희어지고, 배는 종놈들의 긴 대답 소리에 저절로 불러진다. 방에는 화분을 들여놓아 기생으로 앉혀 두고, 뜨락에 있는 나무에는 학을 친다. 설령 궁색한 선비가 되어 고향에서 살더라도, 제 맘대로 할 수가 있다. 이웃집 소를 빌려 내 밭 먼저 갈게 하고, 마을 사람들을 시켜 김을 매게 한다. 만일 누가 양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잡아들여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상투를 잡아매어 수염을 뽑을 수 있다. 그렇게 벌을 주더라도 원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군수가 양반 문서의 내용을 여기까지 읽어 주자, 부자가 갑자기 두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제발 그만두시오! 양반이라는 게 참 맹랑하구려.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시오?”
그리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달아나 버렸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당시 백성들의 눈에 비친 양반들의 모습이란,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도둑놈에 불과하다는 거다.
‘양반전’은 양반의 무능력과 부패상 등 조선 후기의 사회상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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