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으로 듣는 음악, 국악
최근 기분 좋은 기사 하나를 읽었다. 우리 국악 음반이 내년에 열리는 제54회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그래미상 후보에 우리 음반, 그것도 국악이 오른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음반은 ‘정가악회 풍류 가곡’이고, 후보로 지명된 부문은 ‘최우수 월드뮤직상’과 ‘최우수 서라운드 음향상’이라고 한다. 우리 국악이 세계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하면서도, 어렵다며 멀리했던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기만 하다.
가을로 천천히 걸어들어 가는 것 같은 오늘, 느린 듯 하면서도 거뜬거뜬 화려하고 웅장한 ‘평조회상’ 연주를 들으며 ‘국악, 이렇게 들어보세요’(송혜진/ 다른세상)를 펼쳤다.
이 책에는 국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국악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는 장자의 ‘심재-마음 굶김’편의 글귀를 통해 국악을 어떻게 들어야할지 방향을 제시한다.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아 보세요.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그런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보세요.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기껏해야 사람을 인식할 뿐이지만 텅 빈 기는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립니다.”
그렇다. 국악은 귀나 마음이 아닌 기로 듣는 음악이다. 그래서 기가 통하듯 저절로 국악을 느끼고 즐기게 될 거라는 말이다.
저자는 많은 문인과 예술가도 국악을 깊이 좋아했다며 신경림 시인의 말을 전한다. “생전에 조지훈 시인이 ‘시를 쓰려면 우리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서 애써 국악을 들어보고 연주회장을 찾아가 보았지만 취미를 붙이기 어려웠는데, 민요에 심취하면서 자연히 국악과 가까워지게 되었다”면서 “말 한마디, 소리 한 가락에도 민중의 정서가 살아 숨 쉬는 민요가 ‘우리말의 보고(寶庫)’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신경림 시인의 말은 국악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이들에게 ‘민요부터 들어보세요.’하면서 조곤조곤 권유하는 것처럼 읽힌다.
저자는 어떤 일에 집중하고 싶을 때는 최충웅과 김중섭이 정악가야금과 단소로 병주한 ‘평조회상’이나 이지영과 노붕이 정악가야금과 대금으로 병주한 ‘보허사’, 문재숙과 홍종진이 김죽파 명인의 풍류가락을 연주한 ‘문재숙-풍류’음반을 들으면 좋다고 한다. 또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피곤할 때, 하고 싶은 일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안 풀려서 우울할 때는 가야금 산조나 황병기의 가야금 작품을 들으면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느리게 시작해서 점차 빠르게 진행되는 50여분 남짓한 가야금산조를 들으면 어지간한 우울쯤은 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국악 어떻게 들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국악과의 만남은 직접적일수록 좋다고 말하고 있다.
“국악의 진 멋을 알기 위한 지름길은 아무래도 체험이다. 체험 중에서도 제일 좋기로는 직접 배워 아는 것이고, 여의치 않으면 음악이 있는 곳을 찾아 그 소리를 직접 느끼고 함께 호흡해 보는 것이 좋겠다. 연주자들이 집중해서 연습하고 있는 자리라든가, 사람이 얼마 모이지 않은 작은 연주회장에서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조용히 음악을 들어볼 기회를 만난다면 더 좋지 않을까.”라고 조언하고 있다. 실제로 연주하는 현장에서 듣는 국악은 살아 움직이는 듯 가슴으로 파고든다. 전기에 감전된 듯 온몸의 피가 강하게 전율하는 느낌도 경험할 수 있다. 그야말로 특별한 감동이다. 저자는 살아가는 동안 ‘내가 한국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몇 번은 있게 마련인데, 연주 현장에서 국악을 온몸으로 듣는 순간도 그 중 한 가지일 것이라고 한다.
가을의 어디쯤을 서성이는 듯하여 쓸쓸할 때, “추광이…….” 하고 시작되는 김광숙의 ‘관산융마’를 들으며 좌절과 사랑을 품은 여행자의 노래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그 때 빠뜨리지 말고 읽어야 할 구절은 바로 이것이다.
“가을 강은 적막하다. 차가운 물살 아래 헤엄치는 물고기가 이따금 강의 정적을 깨우지만, 그 냉랭한 소리가 오히려 서늘한 바람처럼 가슴을 친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그 동안 마음 의지할 곳 하나 변변히 마련해 두지 못한 한 노년의 여행자는 가을 강 앞에서 오래오래 서성인다. 돌아다보면 매화꽃 같은 미명(美名)을 날리던 때도 없지 않았건만 지금 내 귓가엔 젓대 소리만 쟁쟁하다. 덧없다. 짧은 사람의 한평생이여.”
언제든 손 내밀어 잡을 수 있기에 소홀히 여겼던 우리 것, 국악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면 ‘국악, 이렇게 들어보세요’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신선한 그곳, 국악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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