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1 월간 제735호>
매화골 통신 (19) 치유의 숲길 걷기

- 민주지산 휴양림에서 -    이동희 / 소설가

민주지산 정상까지는 여기서 2시간이 걸린다.
다시 와야겠다.
“또 올 것을 남겨 두는 것도 좋지 않아?”
그의 미안함을 그렇게 이해해주는 것도 숲의 치유 덕이다.

매곡면 소재지 노천리 앞길 49번 도로에는 민주지산길 몇 호 몇 호라는 길번호가 써 붙여져 있다. 새 주소가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매겨져 있는 것이다.
아직 생소하지만 길 찾기 집 찾기의 편리함을 위해서 전국적으로 새로 만든 행정 제도다. 사실 시골에서야 길 찾기가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지만 이 길로 수없이 왕래하는 자동차들이 대부분 네비게이션을 달고 다니고 주소만 눌러 놓으면 어디든 다 찾아가도록 해 주고 있으므로 그런 것을 위해서라도 체계적인 주소라고 할까 번지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번지란 땅을 조각조각 갈라서 매긴 번호다. 번호가 매겨진 땅이름 집이름이다. 대지든 농지든 체계는 같다. 땅은 사정에 따라 또는 편리한 대로 쪼개고 합치고 하게 된다. 번지수가 자꾸 추가되어 한 번지 내에 수없이 많은 번지, 가령 1-1, 1-2, 1-3 등과 같이 한 번지를 구분하기도 하고 그것이 수없이 추가되기도 한다. 어떤 지역 동네는 전체가 한 번지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예를 하나 보면, 여의도동 1번지부터 여의도동 86번지까지 지역 이름에 번지수가 부여돼 있다. 이에 따라 여의도동 40번지는 여의도동 86번지보다 여의도동 10번지와 더욱 가깝다. 여의도동 40번지를 찾아갈 때 여의도동 1번지는 여의도동 서쪽에 여의도동 86번지는 여의도동 동쪽에 있다. 두부모처럼 잘라 놓은 서울 도심도 번지를 가지고 찾아가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그런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의 번지 체계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졌고 그것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한 작업이든 아니든 간에 뜯어고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국민학교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명칭이라 하여 초등학교로 바꾸고 경복궁을 깔고 뭉개기 위해 그 앞에 지은 중앙청 청사의 상투를 쇠톱으로 잘라 내는 쇼를 한 것처럼 이런 번지 체계를 뒤집어놓는 노력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주소 번지 그 내력에 대한 얘기가 아니고 마을 앞 49번 도로에는 새 가로 표지가 써 붙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의 집이 있는 골목 노천리 2길 앞 신작로-여기서는 아직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에는 민주지산길 35675라고 써 있다. 그 길로 계속 가면 민주지산이 되는 것이다.
민주지산은 1241.7m로 이 골짜기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그래서 길 이름도 그렇게 붙인 것이다. 그 다음 높은 산으로는 석기봉 각호산 삼도봉이 있다. 이 길로 계속 민주지산 앞으로 해서 무주 설천 쪽으로 가면 1614m의 덕유산 향적봉으로 가게 된다. 바로 마을 앞을 가로 막고 있는 황악산도 1114m다.
산 봉우리 높이를 얘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높이를 가지고 이러고 저러고 하는 것도 어쩌면 속물적인 이야기다. 중국 제남의 1545m의 태산을 올랐을 때 여기가 과연 양사언이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고 시조(時調)에 쓴 그 산인가 하고 실망도 했다. 6666개 돌계단을 올라 천가(天街)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옥황상제를 만나보고 생각을 달리 했지만. 산이 얼마나 높고 낮고를 막론하고 그 산이 갖는 가치나 매력을 나름대로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좌우간 그런 것은 어떻든 간에 이 앞길로 계속 올라가면 민주지산이 되고 거기를 가기 위해 승용차, 승합차 그리고 행락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쉼 없이 속력을 내어 달린다.
민주지산으로 가다가 임산을 조금 지나 도대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물한계곡이 된다. 여기도 단양의 화양계곡 무주의 구천동 계곡 못지 않게 여름 휴가철이면 사람이 끓는다. 그리로도 계속 올라가면 각호산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정상이 된다.
그러나 민주지산은 고자리로 해서 도마령을 넘어 무주 쪽으로 가다가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을 거쳐 올라가는 등산로가 최단 코스이다.
아이들이 방학이라고 내려와 하루는 물한계곡을 가고 하루는 민주지산 휴양림을 갔다. 장마철이라 연일 소나기가 비구름을 몰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날이었다.
도마령에 오르면 민주지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다. 덕유산까지 다 보인다. 전망대 한 귀퉁이에 차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고자리 호두나무골 이오두막 이동 판매대였다. 거기서 박하차를 그냥 마시라고 주었다. 이쪽 인심이라고 느껴졌다. 한 뼘은 되는 박하나무 화분을 2개 샀다. 1000원이었다. 그 가게 아주머니-농장 주인이리라-가 주는 명함 뒷면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흘러간다 천천히 강물도 사람도(Slowfood n Slowlife)’
조금 내려가다가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 상촌에 위치한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 얼마 올라가다가 관리사무소 옆 주차장에 차들을 파킹하고 걷기 시작하였다. 치유의 숲, 해발 700m의 자갈길 숲길이다.
말 그대로 치유(治癒)란 녹음이 짙은 숲에 들어가 향기를 마시거나 피부에 접촉시키고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마음과 몸을 동시에 단련하고 안정을 취하는 자연건강요법을 말한다. 쾌적한 온도의 산림 기후, 향기로운 내음, 푸른 색깔, 아름다운 수목의 자태가 특히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고 휘발성의 식물체에 의해 산림의 공기가 청정하게 되고 피톤치드의 살균작용의 기능으로 노폐물이 축적된 인체를 씻어준다.
치유의 숲길을 번호대로 따라 올라가다 보면 목교 이야기숲길, 산림휴양관 등이 있고 야영장, 취사장, 분수대 등이 있으며 태평소, 대금, 가야금, 거문고의 국악동 세미나실 등도 있다. 황토찜질방, 너와집, 자연학습관 등 콘도미니엄 시설도 되어 있다. 숙박 예약은 인터넷 선착순이다. 방 3개가 딸린 펜션의 1박에 15만원 정도인데 경쟁이 심하다.
곳곳에 폭포가 있고 물놀이장이 있고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그림 같이 걸려 있다. 이런 데서 며칠 푹 쉬었다 가면 몸과 마음의 피로가 다 풀릴 것 같지만 그런 것도 다 부지런해야 한다. 피톤치드를 맘껏 마시고 발에 물을 담그고 청중도 복숭아를 하나씩 들고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민주지산 정상까지는 여기서 115분, 2시간이 걸린다. 조금 일찍 다시 와야겠다.
“또 올 것을 남겨 두는 것도 좋지 않아?”
“항상 소설만 쓰시지.”
그의 미안함을 그렇게 이해해주는 것도 숲의 치유 덕이다.

무더위 속에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소나기가 오락가락 하는 날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에 들어가 치유의 숲길을 걸었다. 땀을 흘리며 걷는 산길이 심신의 치료가 된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하루였다. 황토방 너와집에 물소리를 들으며 지내는 건 신선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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