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1 월간 제735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죽을 날을 미리 알았던 점쟁이 홍계관 이야기

조선 제13대 왕 명종 때 서울에는 홍계관이란 사람이 살았다. 그는 용한 점쟁이로 이름 높아 장안에 어린 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까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홍계관은 자신의 운수를 점쳐 보았다. 그랬더니 모년 모월 모일에 죽는다는 점괘가 나오는 것이었다.
‘살아날 방법은 없을까?’
홍계관은 그 방법을 찾아보았다.
‘음, 전하께서 앉는 의자 밑에 숨으면 살 수 있다?’
홍계관은 이런 점괘가 나오자 곧장 명종을 찾아갔다. 그래서 명종의 승낙을 얻어 그가 앉는 의자 밑에 숨어 있었다. 명종은 홍계관이 점쟁이이긴 하지만 얼마나 용한지 궁금했다. 그래서 때마침 쥐 한 마리가 마당을 지나가자, 홍계관에게 물었다.

죽음 피하려 임금의자 밑에 숨어

“방금 쥐가 지나갔는데 모두 몇 마리인지 알아맞혀 보아라.”
“세 마리입니다.”
“뭐라고?”
명종은 홍계관의 대답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용한 점쟁이인 줄 알았더니 순 사기꾼이로구나! 세상 사람들을 속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놈이야. 저놈을 형장에 끌고 가 목을 쳐라!”
홍계관은 형리에게 넘겨져 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는 형장에서 자신의 운수를 점쳐 보았다. 그랬더니 한 시간만 잘 버티면 목숨을 건진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홍계관은 형리에게 부탁했다.
“형 집행을 한 시간만 늦춰 주시오.”
“그럽시다.”
형리는 홍계관의 부탁을 선선히 들어주었다.
한편, 명종은 홍계관을 형장으로 보내 놓고 생각에 잠겼다.
‘홍계관은 왜, 쥐가 한 마리 지나갔는데 세 마리가 지나갔다고 했을까? 혹시 그 쥐는 새끼를 밴 쥐가 아닐까?’
명종은 신하를 불러 쥐를 잡아오게 한 뒤 배를 갈라 보았다. 그러자 뱃속에는 새끼 쥐 두 마리가 있었다.
‘이크,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임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형장으로 가서 형 집행을 중지시켜라.”
“예, 전하.”

‘아차고개’라 불러

신하는 임금의 명을 받고 형장을 향해 급히 말을 달렸다. 고갯마루에 이르러 보니 저만치 형장이 보였다.
신하는 형장에 있는 형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형 집행을 중지하라!”
형리는 말을 타고 달려오는 신하를 보았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 그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신하는 형 집행을 중지하라고 손을 저었다. 그런데 형리는 그것을 잘못 알아들었다.
‘빨리 처형하라고 재촉하는구나.’
이렇게 판단한 형리는 얼른 홍계관의 목을 베어 버렸다.
신하가 돌아와 처형 소식을 전하자, 임금은 이렇게 탄식했다.
“아차! 이미 늦었구나!”
이때부터 형장이 있던 고개, 즉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2가 문배산 기슭에 있는 ‘당고개(堂峴)’를 ‘아차고개’라고 불렀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우리나라 고개들의 이름을 보면 참 특이하고 재미있는 이름이 많은데, 백령도의 ‘침뱉는재’는 어쩌다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나요?”

옛날 백령도라는 섬에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선비는 일찍 결혼하여 부인이 있었지만, 집안 살림에는 관심이 없었다.
쌀독에 쌀이 떨어져도 돈 한 푼 구해 올 생각은 하지 않고 자나 깨나 오로지 글만 읽었다.
부인은 견디다 못해 더 이상 못살고 집에서 나와 버렸다.
몇 년 뒤, 부인은 자신의 전 남편이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선비를 버리고 떠나온 것을 후회하며 선비를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선비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당신을 용서해 주겠다며, 물 한 동이를 길어와 땅에 쏟아 버린 뒤 그 물을 몽땅 동이에 주워 담으라고 했다.
터무니없는 주문이었다. 한번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몽땅 주워 담겠는가.
그러나 부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양의 물을 동이에 담은 뒤, 동이를 들고 백령도의 고갯마루로 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동이에 침을 뱉어 주세요!”
사람들은 동이 앞에 줄을 서고 차례로 동이에 침을 뱉었다.
부인이 이 일을 시작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주워 담지 못한 물의 양만큼 침으로 채운다면, 그 정성에 감동되어 선비가 자기를 용서해 주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 후 부인이 동이를 침으로 채워 남편의 용서를 받았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백령도 사람들은 그때부터 이 고개를 지날 때마다 침을 뱉게 되었고, 고개 이름도 ‘침뱉는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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