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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5 격주간 제64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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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의 소리> 4-H라는 이름으로 하나됨을 바라며 |
김 재 일 직전회장(경기도 화성시4-H연합회)
우리 식으로 계산하면 벌써 내 나이 서른이다. 그 30년 가운데 4-H를 알게 된지도 벌써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화성시4-H연합회 오락부장에서부터 시 연합회장, 경기도연합회 부회장, 지난해에는 도감사까지 경험했다. 여러 직책을 맡으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는 가운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다르게 표현하면 4-H가 나의 인생에 간섭하기 시작한 후로 내 삶의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엔 산업기능요원이란 이름으로 4-H를 접했다. 그전부터 4-H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이 당시에는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산업기능요원을 하면서 시작된 본격적인 4-H활동들은 나에게 생각의 변화를 주기 시작했고, 농업에 대한 나의 시각도 바뀌게 되었다.
농사를 본업으로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던 나. 하지만 4-H 안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특히 한 친구를 만나면서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과 보람있고 멋진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4-H에서 만난 모든 이들은 혼자이고 나약하기만 한 내게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몇 년 전에는 중학교 때의 은사님도 만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농업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자부심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이처럼 4-H는 나의 인생에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 그렇듯 소중한 4-H회가 지금은 큰 과도기를 맞이한 것 같다. 아직은 밖으로 그다지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여러 지역에서 서서히 학교 출신별로 이런 저런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출신 학교가 어디든, 지역이 어디든 별 상관이 없었다. 4-H라는 이름 하나로 모두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4-H말고도 별도의 또 다른 하나의 단체가 더 생겨나면서 그 학교 출신이 아닌 다른 학교 출신들이 설 자리가 너무 없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4-H란 단체에서 생활해오면서 하나라는 것을 배워온 우리가 어느 한쪽으로 이상 편중되어 다른 사람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가당치 않은 모양이지 싶다.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4-H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4-H라는 이름으로 다시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느 학교 출신이든 어떤 지역 출신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4-H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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