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회 동제- 이동희 / 소설가
"연초에 대동회를 열고 동제를 지낸다
마을의 수호 안녕 풍요 그리고 모든 액이 물러가기를 빌며"
더러 얘기하였지만 이 시골 산골 마을에 볼 것이라고는 맑은 공기밖에 없다. 청정하다고 할까 향기롭다고 할까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숨쉬고 산다는 것은 큰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대도시에 가면, 가령 서울역에 내려 버스를 타기 전에 벌써 숨이 막힌다. 목이 따갑고 눈이 아프다. 한참 있으면 면역이 되지만 처음에는 견디기가 무척 힘들다. 마치 구들이 꺼져 방 안에 연기가 꽉 찬 것 같다. 공기만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 사람들에게 매연을 뿜어대는 대도시는 마치 굴뚝 속과 같다.
그 청정한 지역에 언제부턴가 괴물이 등장하였다. 수원리 건너편 더구리에 이상한 시설을 해 놓은 것이다. 마을도 다 이전시켰다.
더구리[德古里]는 마을이 송두리째 없어졌다. 집과 땅에 대하여 다 보상을 받기는 했다고 하지만 대대로 살던 마을을 떠나 여기 저기 흩어져 살아야 했다. 묘도 파 옮겼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마음에 안 들어도 할 수가 없다. 그 마을 살던 박윤근(77)씨는 노천리 상부 그의 이웃에 와서 포도와 논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을 다 내보내고 군부대가 들어와 산꼭대기까지 길을 내고 삥삥 둘러 보안등을 설치하고 밤낮주야로 보안견을 앞세우고 초병이 경비를 하는 데다가 그것도 밤에만 지붕을 씌운 트럭이 무엇을 잔뜩 싣고 밤새도록 들랑 날랑 붕붕거리는 것이어서 대단히 불안하였다. 누구한테 물어도 답변을 해주는 사람이 없고 군사기밀이라기도 하고 쉬쉬하였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 마을 사람만이 아니고 이 지역 전체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촌구석 농삿군들이라고 하지만 따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면장한테 몰려가 따지고 군수에게 항의하며 물어보고 하였지만 모른다는 것이고 그러면 어디 누구에게 물어봐야 되느냐고 했을 때 물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역시 무슨 기밀이고 뭐가 어떻고 하며 그냥 돌아가 가만히 농사나 지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땅파기였다. 답답하고 속만 상하였다. 이상한 예감이 들고 점점 더 불안해졌다. 무슨 화학탄이라기도 하고 핵무기라기도 하여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얼마나 대단한 것이어서 그렇게 야단스럽게 경비를 하고 밤에만 설치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이상한 것이라면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하는 수작이냐는 것이다. 정부고 국방부고 미국이고 그런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시골 농민을 뭘로 보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부대 앞에 가서 데모를 하고 서울 국방부 앞으로 관광버스 몇 대를 대절하여 몰려가서 농민들 불안에 떨게 하는 괴시설을 없애달라고 목이 터져라고 부르짖었다.
시위도 여러 번 하고 항의도 무수히 하였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군당국이나 행정관서에서는 코도 들썩이지 않았다.
민주주의 국가니 시위를 막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년 속을 태우고 지쳐 나자빠지기를 기다려서야 반응이 나왔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해 놓은 군사시설을 옮길 수는 없고 마을에 유용한 것을 건설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저온 창고를 지어준다든지 길을 포장해준다든지 또 다른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구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그런 거 다 필요 없어요. 만금을 줘도 필요 없으닝께 원상복구 해 놔요.”
“왜 하필이면 여기냐 말이요?”
“우리를 물로 알아요?”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그런 얘기도 다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인상을 쓰고 험악하게 말해도 소용없는 것이 이미 이장회의에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 나간 놈들! 또 거기다 대고 호통을 쳐 보지만, 입만 아팠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이다. 참 한심한 사람들이다. 한심한 일이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좋으나 싫으나 이 마을 저 마을에 저온창고 물류창고를 짓고 산골짜기 고갯길까지 아스팔트 포장을 하였다. 그 길로 외지 승용차들이 드라이브를 하며 매연을 뿜어대었다.
또 얼마 전부터는 화학무기가 아니고 고폭탄을 해체하는 작업을 민간업자 S화학이 추진하고 있다고 하였다. 불안하고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좌우간 그와 관련하여 얼마 전부터 면 사무소 앞에 대기오염 측정판을 거창하게 매달아 놓았다.
오존의 측정치를 ppm으로 나타내는 계기판이라는 것이다. 작업장 공장 굴뚝 끝에 붙여놓은 센서가 이 측정판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거기에 기준치 허용치를 비교하여 볼 수 있도록 하여 그것을 보면 얼마만큼 대기의 오염이 되었는지 여부를 알 수가 있다고 하였다.
얼마가 허용치이고 얼마를 벗어나면 위험한 것인지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 청정한 곳의 공기를 오염시킨다고 항의를 하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일 아황산가스 이산화탄소 등이 허용치를 초과하면 그 때 따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괴시설로 하여 대기오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측정판에는 그런 것은 써져 있지 않고 다른 것만 적색 녹색 글자로 내보내고 있었다.
‘환경오염 행위/신고는/국번 없이 128’ ‘자동차 공회전/3분 이내로/자동차 배출가스/줄입시다’ ‘안전한/친환경 농산물/믿을 수 있는 우리 농산물’ 등등의 홍보였다.
고폭탄반대대책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옥전리의 안병익(45)씨는 영동군을 상대로, 폐기물관리법 위반으로 행정소송을 하였는데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를 하였다는 것이고 이제 더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 하였다.
화학무기는 2008년도에 끝나고 고폭탄 해체 작업을 하는 것인데 가격 비용을 협상 중이며 그래서 지금 공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마을마다 연초에 대동회를 열고 동제를 지낸다. 노천리 마을 가운데에는 600년 수령의 괴목(槐木) 동구나무가 수호신으로 서 있고 세 아름이나 되는 그 나무 허리에는 일년 내내 동제를 지낼 때 친 금줄이 그대로 있다.
지난 2월 5일 노천리 상 중 하리 마을 사람들은 대동회의를 열어 마을 대소사를 논의하고 이종수 대동회장을 유임시켰다.
거기에 따라 지난 16일(음력 2월 14일)저녁 자정 무렵 제주인 대동회장은 눈섞인 비가 오는 가운데 동제를 올렸다. 헌주(獻酒) 독축(讀祝) 소지(燒紙)를 하고 음복(飮福)은 생활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회관의 마을 유지들과 같이 했다.
자정이 지났으므로 정월 대보름 새벽이다. 귀밝이술이 되었다. 제에 올린 과일로 부름도 깨었다. 복을 빌고 마을의 수호 안녕 풍요 그리고 모든 액이 물러가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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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수호신 둥구나무 앞에서 금년 한 해 풍년과 마을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내고 있다. 음력 정월 열나흘날 심야에 제주는 한복 두루마기를 차려 입고 돼지머리 백설기 시루떡에 과일과 포를 진설하고 세수를 한 후 잔을 올리고 축을 읽는다. 얼마만큼 정성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마을 액운이 좌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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