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1 월간 제729호>
[4-H인의 필독서] 법정 ‘인도기행’

생사가 낯설지 않게 마주하고 있는 곳, 인도

 
시간을 거스르고 싶기 때문일까? 나는 오지여행을 꿈꾸며, 오지를 찾아 떠난다. 이번에도 그랬다.
네팔 시골로 여행을 간다는 지인의 말에 뒤늦게 합류하여 함께 떠났다. 오지 여행은 늘 위험이 따르지만,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잔혹했다. 바로 비포장도로 때문이었다.
진흙과 바위로 어우러진 히말라야 산길에 비가 내렸다. 차량 통행이 힘들다는 네팔 친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차에 올랐고 이내 무모한 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팔 운전기사는 우리의 비명소리를 무시한 채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바퀴는 헛돌았고 진창에 박히기 일쑤였다. 사방은 어둡고 차는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2시간 만에 목적지인 치트레 마을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홈스테이 하는 집, 다락방 나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생사의 기로에서 떨었던 시간 탓인지 잠이 안 왔다. 작은 손전등을 켜들고, 배낭에서 법정의 ‘인도기행’을 꺼내 읽었다.
“이곳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변에서는 생사가 전혀 낯설지 않게 마주하고 있다. 갠지스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무심히 흐른다. 말이 흐른다지, 전혀 흐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생사가 전혀 낯설지 않게 마주하고 있다’는 구절이 머리를 후려쳤다. 그 비포장도로 위에서 생사를 마주하고 있던 나는 살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어쩌면 네팔 기사는 보름 달빛만으로 운전하는 것이 더 편했을지 모른다. 그런 그에게 라이트를 켜라며 소리를 쳐댔고 사방이 환해지자, 길 가장자리의 낭떠러지를 겁내며 더욱 소란을 떨었던 거다. 순간 두 뺨이 화끈거렸다.
여행 기간 내내 읽은 ‘인도 기행’에는 ‘삶과 죽음을 넘어서’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책은 법정 스님이 1989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불교 성지를 여행한 후 쓴 것이다. 처음에는 여행을 하며 그때그때 원고와 사진을 모 신문사로 보내 기사화할 계획이었는데 현지의 통신 사정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인 1990년 3월부터 11월까지 꼬박 9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 엮었다.
법정스님은 인도를 다녀온 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그 첫 번째는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그 전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또 손수 끓여 먹는 자취 생활에 대한 타성과 불만이 사라졌는데, 손수 끓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인도는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나라이면서 또한 가보기를 꺼리는 나라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 인도를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도는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다. 그러나 결코 가난한 나라는 아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네팔 사람들을 생각했다. 내가 네팔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가 물었다.
“네팔이 뭐가 좋니?” “사람들이 좋아.” “왜?” “가난하지만 떳떳해.”
인도는 네팔과 유사하지만 다르다. 법정 스님도 그런 점을 한 눈에 알아봤다. 스님은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가기 위해 인도에서 장대 하나 걸쳐 놓은 국경을 넘어 네팔로 간다. 그리고 네팔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미 열린 길 위에 금을 긋고 벽을 쌓아 경계하는 선진국보다는 훨씬 인간적이었다. 부처님 탄생지로 가는 길목다웠다’ 그리고 ‘시차도 인도보다 15분 빨랐다. 단 그 15분으로 네팔은 인도에 예속되지 않은 주권국가임을 말하는 듯 했다.’ 이어서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인도 사람들처럼 눈빛이 희번덕거리지 않고 유순해 보인다.’ 그렇다. 네팔과 인도는 닮아있으면서 다르다. 그 사실을 인도에 가보지 않은 나는 ‘인도 여행’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밤, 법정스님은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음은 또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생각하느라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이렇게 써내려간다.
“영원한 낮이 없듯이 영원한 밤도 없다. 낮이 기울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새날이 가까워진다. 우리는 순간순간 죽어가면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살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중략)…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날을 이룰 때, 그 삶에는 신선한 바람과 향기로운 뜰이 마련된다.”
그렇다. 순간순간 새로 태어나 새로운 날을 이루는 삶이야말로 이 봄날 우리가 살아 내야할 인생이다. 이 봄, 떠나고 싶으나 떠날 수 없는 당신, ‘인도 기행’을 읽으며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고 복잡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살아있는 인도를 느린 발걸음으로 여행해 보시라!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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