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1 월간 제728호>
매화골 통신 ⑫ 신역을 하며 산다
-농촌삶과 농업사고-    이동희 / 소설가

"들, 논과 밭은 그들에게 하나의 운동장이며 놀이마당이다.
들에서 꿈적거릴 때까지 꿈적거리다가 주저앉으면 산으로 가면 된다."


1년, 열 두 번을 썼다. 뭘 썼는지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 여럿을 만나서 사는 얘기 농사짓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의외로 농촌에 사는 자부심을 갖고 살고 있었다. 여유가 있고 도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많이 갖고 있었다.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이냐 어떻게 하는 것이 웰빙이냐, 언젠가부터 우리는 삶의 질을 따지고 있는데 농촌삶 농업사고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포도 덩굴 낡은 껍질을 벗겨내며 복숭아 봉지를 싸며 묘등의 풀을 깍으며 들려준 이야기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말해 주고 있었다.
시골 농촌에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자동차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다 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있었고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있었다. 보일러도 기름 보일러 가스 보일러 장작 보일러에다 대부분 심야전기 보일러를 사용하였고 연탄 보일러는 웬만한 집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돈을 아끼기 위해 전기장판 물장판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돈이 없어 공부를 못 시키었다. 맏이나 제일 머리가 좋고 똑똑한 아들을 골라 학교를 보내고 공부를 시켰고 나머지는 농사를 짓게 했다. 농사를 짓는 아들은 공부도 시키지 않았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도 있지만 농사를 짓는 데는 힘만 쓰면 되었지 머리는 쓸 필요가 없고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실력이 없거나 갈 수가 없어서 못 가지 갈 수만 있다면 다 학교를 보냈고 대학을 보냈다. 그리고 초등학교뿐만이 아니고 중학교도 의무교육이 되어 있었다. 도시락을 싸 갈 필요도 없이 점심도 학교에서 그냥 주었다.
임산에서 약방을 하고 있으면서 이것저것 농사도 많이 짓고 있는 강석호씨는 군의원을 지내서 강의원으로 통했다. 시도 쓰는 시인이고 서예도 하며 군이나 면 행사에 얼굴을 빠지지 않고 내미는 유지이다.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강의원이 중학교에 들어간 이야기는 참으로 눈물겨웠다. 아버지에게, 원이나 없게 한번 시험만 쳐 보고 싶다고 애원하여 시험을 쳤다. 물론 합격을 해도 학교에는 다니지 않겠다는 전제하에서였다. 강의원의 아버지는 시험에 떨어지길 바랐고 그래서 합격 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강의원이 어찌어찌하여 입학을 하였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일이나 하라고 나무랐다. 그러나 강의원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학교를 졸업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농투사니로만 머물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지만 강의원은 아버지를 참으로 흐뭇한 추억으로 회상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수입도 꽤 되었다. 1년 농사에 포도나 복숭아의 경우 몇 천만원은 보통이고 억을 넘는 사람도 많았다. 감에다 호두에다 고추 양파 고구마 콩 깨… 다 쏠쏠하였다. 쌀도 물론 돈이 되었다. 먹는 것은 다 자급되고 따지고 보면 돈 들 곳이 없다. 오히려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실직을 하였다 뭐가 어떻다 하며 축을 내었고 그렇지 않고는 목돈을 쓸 일이 없다. 장비다 시설이다 투자를 하지만 매년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들, 논과 밭은 그들에게 있어서 활동공간으로 하나의 운동장이며 놀이마당이다. 그냥 가만히 방 안에 있거나 골목에 어정거리고 있으면 운동 부족이 된다. 풀도 뽑고 거름도 하고 갈아엎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남자고 여자고 따로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품이 문제가 아니고 신역(身役)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들에서 꿈적거릴 때까지 꿈적거리다가 주저앉으면 산으로 가면 된다.
시골 구석에 사는 농삿군이라고는 하지만 할 말은 다 하고 산다. 설을 앞두고 눈이 오는 날 스피커에서 방송이 되었다. 오후 2시 면사무소에서 하수도 시설 정화조 관계로 설명회가 있다고 하였다. 전날 밤에는 상 중 하구 마을회관에서 그 관계로 회의를 하였다. 집집마다 정화조가 있었는데 하수도 시설을 다시 하고 종말처리장을 만들고 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고 앞으로 무용지물이 되는 정화조에 대한 대책 회의였다.
시간이 되자 면사무소 2층에 마을 사람들이 꽤 많이 모였다. 한국환경공단 그리고 공사를 맡은 무슨 건설회사애서 만든 설명 자료를 나눠주어 모두들 그것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상구 남기태 이장이 공사관계자들 5, 6명을 소개하고 그 중 한 사람이 나와 설명을 하였다. 대청댐 상류 하수도 시설 공사였다. 하수처리장 공사는 지난 해 연말 완료하였고 배수 설비와 처리장 시운전은 2월과 3월에 하여 9월까지 준공한다는 것이다.
설명이 채 끝나지도 않아서 마을 사람들은, 도대체 환경공단이 무얼 하는 곳이냐, 누가 공사를 해 달라고 하였느냐, 왜 하수처리장 옆에 공원을 만들어준다고 약속하고 지키지 않느냐, 약속부터 지키고 설명회를 다시 열어라, 마구 항의성 질문을 하고 따졌다. 핵심사항은 기존의 정화조를 폐쇄하는 것이고 거기에 모래라도 채워달라고 요구한 것인데, 정화조는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이에 대한 처리는 개인이 부담해야 된다고 하였다. 말이 안 되었다. 그것을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파내고 메꾸는데 드는 비용을 각자가 부담 하라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그것은 오히려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이다. 100만원씩 들여 설치해놓은 정화조를 옆에 뻗혀 놓고 다시 하수도 시설을 하였으면 그것을 없애주기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 어떻게 이것은 정부 시책이고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고 사유재산이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일어나 따지었다. 재산은 무슨 똥덩어리만큼도 가치가 없는 콘크리트 폐기물이 뭐 말라비틀어진 사유재산이냐.
“시골 무지랭이라고 그렇게 만만하게 보면 안 돼야.”
“이 청정지역에 와서 뭣들 하는 거여?”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 가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세요. 이 추운 날씨에 여기 할 일 없이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고요.”
이 사람 저 사람 공사 관계자가 일어나 설명을 하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답변을 들으러 왔지 설명을 들으러 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공사를 맡아 하는 사람들이고 문제는 정부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린 급할 것이 없으니께 대책을 세워가지고 공사를 마무리하세요. 긴 얘기 할 것 없어요.”
이종수 대동회 회장이 일어나 한 마디 하자 모두들 조용하였다. 그러나 역시 대책은 없었다.
결론이 없는 설명회였다.

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하수도 공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젊은 사람들 이장 반장들이 다 나왔다. 왜 멀쩡한 정화조를 두고 하수도 공사를 하고 뒤처리는 우리보고 하라는 거냐, 공사관계자들에게 따지었다. 그래봐야 소용은 없었다. 정부예산에 반영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글로벌 농업 청년리더 250명 선발 육성
다음기사   청소년-사회 전반에 4-H이념 크게 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