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1 월간 제728호>
<4-H인의 필독서> 장영복 ‘숲을 읽어요’

마음으로 만나는 생태 이야기

난생 처음 동상에 걸렸다. 겨울산행이 남겨준 흔적이다. 동상으로 발이 쑤시는데도 겨울산행을 포기 못한다. 겨울 숲이 지닌 신비감 때문이다. 눈에 덮여 있지만 간혹 눈이 녹은 곳, 햇살 가득한 자리에는 초록 생명이 움튼다.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겨우 내내 땅 속에 웅크리고 있다고 여겨졌던 생명 한 자락이 햇볕 아래서 꿋꿋하게 피어나고 피어난다. 그 생명의 힘이 그리울 때면 나는 추위 속에서도 산에 오른다.
그러나 늘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것은 아니어서 여러 사정으로 산에 오를 수 없을 때면, 장영복 시인이 원미산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 펴낸 책 ‘숲을 읽어요’를 읽는다.
마음으로 만나는 생태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이 책은 어린이들을 위해 쓴 것이지만, 어른들도 숲을 알아가는 재미에 빠져들게 한다. 한마디로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초록 표지의 책장을 넘기는 순간 마음을 끌어당겼고 그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곁에 두고 자주 펼쳐 읽는다. 어떨 때는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고 어떤 때는 책에 실린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며 읽는다. 이렇게 읽어도 저렇게 읽어도 괜찮다.
가까운 이들에게 “함께 산에 갈래요?”하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흔들며 “뭐하러 힘들게 올라갔다 내려오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 나는 대답한다. “올라갔으니까 내려올 수 있는 거예요.” 이 책에서는 한두 번만 숲을 만나면 금방 숲과 친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어떤 유전자가 숲에 가면 덥석 숲의 손을 잡게 한다는 거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연을 지극히 사랑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본능’이 잠재되어 있다고 해요. 미국 하버드 대학의 윌슨이라는 사람은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런 현상을 설명했답니다. (중략) 나도 숲을 좋아하는 힘센 유전자를 가진 게 틀림없어요. 오랫동안 숲 산책을 해 왔는데, 한 번도 숲에 가는 일이 싫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 글을 읽으면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바이오필리아를 생각해 보았다.
이전의 나 역시 숲이나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한두 번 산에 오르고 나니 이제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어느 날 오래 묵은 산소 옆에서 처음으로 꽃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그 꽃의 이름을 몰랐고 식물도감을 한참 뒤적여 꽃의 이름을 찾아냈다.
‘사위질빵’이었다. ‘사위질빵’은 옛날 어떤 장모가 사위에게 짐을 지울 때 썼던 덩굴이다. 장모는 사위질빵보다 질긴 ‘할미밀망’ 덩굴로 짐을 졌다고 한다. 꽃을 통해 사위를 아끼는 부모 마음을 알게 된 저자는 꽃을 보면 사진을 찍고 이름을 찾아보았고 갈수록 이름을 알게 된 꽃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듬해 여름이 되었을 때에는 숲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어요. 내가 그저 지나다닐 때는 숲도 그저 나를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나 봐요. 들꽃의 이름을 불러주며 다가앉았더니 숲은 친한 동무처럼 내 손을 이끄는 것이었어요.”
공감이 된다. 하물며 꽃이 이러할 진데, 사람들의 관계는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먼저 이름을 불러주고 다가앉아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평범한 이치를 잊어버리고 옹색하게 굴면서, 가시를 품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시’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건 바로 탱자나무 이야기였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 중에 ‘가시 돋힌 몸으로는 누군가를 껴안을 수 없다.’는 문장이 오래오래 잊혀 지지 않았습니다.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선 내 마음에 가시처럼 미워하는 마음이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탱자나무 가시에 비유한 문장이었지요. 나는 내 마음에 그러한 가시가 없다고 자신할 수 없으므로 나를 부끄럽게 하는 문장입니다. 그러나 탱자나무에게 나는 내가 읽은 구절을 전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숲을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세상을 향하는 저자의 사고를 읽게 한다.
탱자나무 가시는 나비들에게는 소중한 안식처라고 한다. 탱자나무 가시에 고치를 지어두면 겨우내 새들의 먹이가 되지 않고 나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탱자나무 가시를 들어 타인의 모자람을 이야기하지만 숲은 탱자나무의 귀함을 알고 품어서 생명을 키워낸다.
2월의 숲은 어떤 모습일까? 계곡은 말랐으나 노루귀, 제비꽃이 고개를 들지 모른다. 싹 틔우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꽃눈, 잎눈을 만나고 싶다면, 지금 ‘숲을 읽어요’를 펼쳐 읽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 싶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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