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01 월간 제726호>
<특별 기고> 현대 농업·농촌의 가치와 비전 ④

김 성 수 (한국4-H본부 부설 농촌청소년문화연구소장
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농업의 다원적 기능

농업은 식량과 원료를 생산하는 본연의 기능 이외에 환경보전, 식량안보, 농촌의 활력 증진 등의 다원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호에서도 지난호에 이어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계속해서 살펴보자.

[농촌경관 제공기능]

농업이나 농촌이 제공하는 자연경관은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아늑함을 제공한다.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 봄에 유채꽃과 목장의 푸르름이 어우러진 광경, 매화, 사과, 복숭아,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 광경, 가을철 황금들녘의 아름다운 풍경 등도 농촌에서만 볼 수 있고, 자연과 어울린 사계절 풍경도 농촌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농업 및 농촌이 주는 이러한 경관의 가치는 공장이 밀집해 있는 산업공단의 경관과 비교해 보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농업경관과 농업생산과의 결합관계는 기술적 상호의존성과 분할할 수 없는 투입물로 인한 결합이 모두 성립하고, 경관과 농업생산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농업경관은 순수공공재적 특성과 지역적 순수공공재적 특성을 동시에 갖는다.

[농촌과 도시의 균형발전]

농업은 농촌에 대량의 일자리를 창출함과 동시에, 도시와 농촌 간의 균형발전에 기여한다. 만약 농업생산이 중단되어 대량 탈농이 일어나면, 농촌거주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하게 되고 이것은 기존의 도시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만든다. 예컨대 교통혼잡이 가중되고 주택 부족으로 인해 집값이 오르게 될 뿐 아니라 실업률이 증대된다. 그리고 도시에서 실업자가 늘어나면, 도시빈민들이 생기고 이들의 밀집지역인 빈민가가 형성될 뿐 아니라 범죄의 가능성도 증가하게 된다. 이처럼 농업의 붕괴는 국가의 사회적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고 도시발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농촌은 또한 사회간접자본을 보호·보전한다. 농촌에는 도로, 교량, 학교, 병원, 문화시설 등 수많은 사회간접자본이 설치되어 있다. 농촌에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으면 학교, 병원, 문화시설 등이 유지되기 어렵고, 그러한 시설들이 없으니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농촌에 농민이 살지 않으면 도로, 교량 등을 관리하기 어렵고 경사지의 토사유출, 산사태 등 국토의 유지·보전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농업 붕괴로 인해 농촌이 파괴되면, 도시민들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커다란 휴식공간이 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이 농업과 농촌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도시의 부담을 덜어주고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할 뿐 아니라 도시민들의 휴식처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농업생산에 의한 농촌지역 유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당한 외부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전통 문화 보전]

우리의 전통문화는 대부분 농업과 농촌에 결부된 것이기 때문에, 농촌이 사라지게 되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전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농업이 문화 보전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 보전은 농업경관과 마찬가지로 농업생산과의 결합관계가 기술적 상호의존성과 분할할 수 없는 투입물로 인한 결합으로 나타나고, 두 산출물 간의 관계가 보완적이다. 또한 전통문화 보전은 지역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만, 그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일반적인 순수공공재 특성을 갖는다 할 수 있다.

[다원적 기능의 경제적 가치]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란 농업을 하게 되면 먹을거리가 생기는 것 외의 다양한 혜택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산물 무역이 자유화되면서, 수입국과 수출국의 입장은 다르게 표명되고 있다. 농업을 포기하고 경관유지, 환경보전, 식량안보 이런 것들을 개별적으로 추구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만큼 공급되는가에 대해서는 농업수출국과 수입국의 입장이 다르다.
농업 수출국들은 ‘농촌경관’, ‘식량안보’를 사고 팔아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쌀을 수입하고, 재고를 비축해서 ‘식량안보’를 해결할 수 있고, 관광농원을 조성해서 ‘농촌경관’을 돈 받고 팔면, 사회적으로 충분한 수준으로 공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의 뒤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농촌경관’이나 ‘식량안보’가 돈 없는 사람들에겐 필요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돈이 없다고 경찰이 국군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건 아닌 것처럼, 돈 없다고 옛날의 뒷동산에 대한 추억도, 아름다운 경치도 보지 말라는 것이 과연 국가의 책무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둘째로, 돈 들여 조성한 ‘농촌경관’ 이 예전과 같은 정취를 주는 것인가의 문제다. 한강 둔치에 조성해둔 보리밭, 밀밭이, 용인의 민속촌에서 보는 초가집이, 우리가 어릴 적 보던 그 보리밭길, 할아버지 사시던 그 초가집과 같지 않다. 마지막으로 수출국들이 주장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데도 일정한 돈은 필요한데, 이게 만만치 않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사회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시장논리에 의해서는 충분한 수준이 달성 되지 못하는 이러한 다양한 혜택을 어찌하면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다원적 기능을 논의하는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평가액]

오세익외(2000)에 따르면 식량안보 기능은 그 가치가 연간 약 1조 7000억원에 이르고, 농업·농촌경관 제공 기능이 약 1조 1200억원, 농촌활력 제고 기능이 약 8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환경보전 기능은 홍수방지 효과가 연간 약 1조 3300억원, 수자원 함양 효과가 약 1조 1400억원, 수질정화 효과가 약 1조 1900억원, 대기정화 효과가 약 2조 2100억원, 토양유실 방지효과가 약 4500억원, 폐기물 처리 효과가 약 900억원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연간 산출하는 효과는 약 10조원이 되는데, 이는 2000년도 쌀 생산액과 비슷한 금액이며, 농업 GDP의 약 48%에 해당하는 크기이다. 이것을 보면 농업은 쌀, 육류, 과일, 채소 등과 같은 식량을 제공하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다원적 기능을 제공하는 효과도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시장재화의 경제적 가치는 국민경제가 성장할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국민들의 소득이 높아질수록 환경의 질, 레저, 여가 등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평가액도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더욱 높아질 것이다.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들의 역할 기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농업과 농촌에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1999년)이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농업과 농촌의 역할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농업·농촌의 국민경제적 역할에 대해 식량안보, 자연환경 보전, 국토 균형발전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특히 대부분의 국민이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미래의 농업·농촌의 기대되는 역할에 대해서는 식량 안정공급(37%), 자연환경 보전(21%), 국토 균형발전(14%), 전원생활 공간(13%), 전통문화 계승(11%), 관광과 휴식의 장(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현지통신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2001.3), 농업의 역할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전체의 38%가 “농약 사용을 줄여서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라 응답하였으며, 그 이외에 “맛있고 영양 높은 고품질의 농산물 생산”(22%), “수입에 의존하지 않도록 보다 많은 식량 생산”(20%) 등으로 응답하여 식량의 안전·안정공급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식량 공급 이외에 농업 부문이 발휘해야 할 역할로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기능”(34%), “홍수를 방지하고 저수지에 물을 담아두는 기능”(27%), “전통기술이나 농촌문화를 계승하는 기능”(15%) 등의 순으로 응답하여, 농업·농촌이 가지는 공익적 기능으로서 자연환경 보전에 대한 요구가 높음을 나타내고 있다.
농촌진흥청 농촌생활연구소(2000)의 연구에 의하면 농촌의 공익적 기능의 10대 순위는 식량생산, 아름다운 자연 경관 제공, 대기정화, 홍수 조절 및 지하수 함양, 생태계 유지, 그린벨트 효과, 정서·심리적인 안정감, 토사유출 방지, 환경교육의 장, 농토 조성의 기능으로 분석되었다. 이처럼 농업·농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농업의 기본적 기능뿐만 아니라 다원적 기능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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