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효 정 회원 (대전 중일고등학교 2학년)
내 고향은 콩밭 매는 아낙네와 칠갑산, 청양고추와 구기자로 유명한 충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청양입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오빠와 저의 공부를 위해서 온 가족이 대전으로 이사를 오면서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었지만 어릴 때 청양에서의 추억과 친구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청양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보고 시골아이 같지 않다고 신기해 하였습니다. 2학년 때 청양에 있는 숭의수련원으로 야영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저는 고향의 수련원으로 가는 것이 신이 나서 막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 덕에 저를 귀여워해주시던 교감선생님께서 청양댁이라고 별명을 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전 그 별명이 싫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별명 속에는 제가 청양에서 보낸 유년시절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전 친구들은 나의 소중한 청양에서의 추억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여름철이면 용배라는 지천에서 따가운 햇살에 등이 벗겨지도록 물놀이하고, 저녁에는 고추잠자리를 잡는다고 운동장을 뛰어 다녔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과 봄이면 고추도 심고, 모내기가 끝나면 내 키 만한 장화를 신고 뜬 모를 심는다고 쫓아다녔습니다. 오뉴월엔 완두콩을 따고, 고구마와 감자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직접 심으신 여름철 맛보던 수박과 참외, 토마토의 그 아삭아삭하면서 달콤한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가을엔 고구마를 캐고, 구기자와 고추를 따고, 땅콩도 캤습니다. 고추와 구기자를 딸 때는 힘이 들었지만 고구마와 땅콩을 캐는 즐거움은 단연 최고였습니다. 겨울철에는 사랑방에서 망치로 호두와 땅콩을 톡톡 쳐서 한 움큼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먹을 때의 그 고소함, 그리고 감기에 걸렸을 때 할머니께서 구워주시던 달콤 쌉싸름 하던 은행 맛.
이 모든 추억들은 몇 해 전에 돌아가신 하회탈 웃음을 닮으셨던 인자하신 할아버지의 미소와 함께 제가 어른이 되어 삶에 지치고 힘들 때 미소 짓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되어 줄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공부에 지치고 힘들 때 그때를 되돌아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르고, 입안에 가득 침이 고입니다.
제 어머니의 고향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토지의 무대, 경남 하동군 악양입니다. 어머니는 항상 어릴 때는 시골에서 자라는 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신적 재산이라고 말씀하시고, 악양이 고향이라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십니다. 이영복의 저서 ‘나무’라는 책에 보면 인간의 정신은 그 사람이 자라온 고향의 산천을 닮는다고 나와 있다며 말입니다. 또 너무 극단적인 예지만 이런 말씀도 가끔 하곤 하셨습니다.
“효정아,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버스를 타고 가다 강가에 펼쳐진 모래사장이 나오자 시골서 자란 아이가 ‘와~ 저기서 친구들이랑 멋지게 씨름 한 판 했으면 좋겠다’ 라고 했는데 도시서 자란 아이는 ‘저기다 빌딩 지으면 돈 많이 벌겠다’ 라는 거야. 씨름 한판이 얼마나 순수하고 멋지니?”
얼마 전에는 할머니 댁을 다녀오면서 전에 다녔던 초등학교와 살던 집을 가봤습니다. 신기하게도 청양은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청양이라는 강촌이 도대체 어디냐고? 굽이굽이 산과 논과 밭 밖에 없는데 무얼 해서 먹고 사냐고? 공장도 들어서고, 개발이 되어야 살지 않겠냐고.
전 싫습니다. 영원한 내 고향 청양은 어릴 적 추억 속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고등학교에 와서 4-H 회원으로 활동하다보니 저는 청양댁이라는 제 별명이, 제 고향이 강촌 청양인 게 참으로 더 좋습니다. 제 내면의 모습은 어쩌면 새침한 도시의 소녀가 아니라 수더분한 콩밭 메는 어여쁜 처자가 맞을 테니까요. 간혹 학교서 농촌 봉사 활동을 갈 때면 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왕성한 활동력을 뽐내곤 하죠.
하지만 내 고향 사람들이 경제적인 궁핍함으로 정신이 황폐해져 가는 생활을 하는 건 싫습니다. 앞으로도 쭉 4-H 활동을 하면서 내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보람된 그 무엇을 찾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 일명 배암굴 동네. 꼭대기 슬라브 지붕 아래 똘이가 멍멍 짓는, 대대손손 터를 잡고 할머니가 살고 있는 그 곳, 내고향 고향집.
저의 소박한 바람은 오빠와 제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으면 시골에서 제가 누렸던 것을 느끼게 해주고, 평생 고향의 추억을 가지고 정신적인 풍요 속에 살게 해주고 싶습니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 제 별명처럼 충청도 청양 댁이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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