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백성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모두 나의 허물 때문이다.
백성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느냐."
1670년(현종 11년) 9월 9일, 제주 목사 노정은 현종에게 보고를 올렸다. 7월 27일 제주에 태풍이 불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강풍과 폭우가 제주를 휩쓸어 많은 집들이 물에 잠기고, 백성들이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벌건 대낮이 밤처럼 어두워졌고, 불어난 바닷물이 성난 파도처럼 들이닥쳐 산과 들에 가득했습니다.
……풀과 나무는 소금에 절인 듯하고, 귤과 유자 등 온갖 나무 열매는 모두 떨어졌습니다. 콩, 조, 기장 등은 잎과 줄기가 말라 버렸습니다. 피해를 입은 농민들은 곳곳에 모여 앉아 통곡을 하고 있으니. 이제 제주에는 사람의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없었던 끔찍한 재난입니다.”
가뭄으로 참혹한 사태 벌어져
이듬해인 1671년(현종 12년) 4월 3일에는 제주 목사가 또 보고를 올렸다. 이번에는 제주에 가뭄이 닥쳐 굶어 죽는 백성이 2260명이나 되고, 살아 있는 사람들도 죽기 직전이어서 귀신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닭과 개를 모조리 잡아먹어 섬 안에는 닭과 개의 울음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입니다. 말과 소를 잡아먹으며 버티는 이도 있지만, 굶주리는 백성들은 서로 잡아먹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해 7월 5일에는 경상도 관찰사가 보고를 올려, 경상도 각 고을에서 가뭄 때문에 죽어가는 백성들의 참혹한 상황을 전했다.
해마다 이런 재난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자, 현종은 1672년(현종 13년) 3월 16일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백성 고통에 식음을 폐한 임금
“아, 나의 허물 때문에 온갖 재난이 닥치는구나. 하늘은 나를 직접 꾸짖지 않고 죄 없는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다니, 백성들을 보살펴야 하는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누렇게 뜬 백성들의 얼굴을 생각하니 잠자리가 편안하지 못하고 음식이 입에 넘어가지 않는구나. 나는 술도 끊고 반찬 가짓수도 줄였으며, 대궐에서 베짜기도 그만두게 했다.
또한 호위 군사의 수를 줄이고 제사 경비도 크게 줄였다. 내가 괴로운 것은, 나라의 창고가 텅 비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줄 곡식이 없는 것이다.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멀거니 서서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그들이 모두 죽으면 이 나라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아, 백성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모두 나의 허물 때문이다. 백성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느냐.”
조선의 왕들은 태풍이나 홍수, 가뭄 등 재난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허물 때문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서, 그 허물을 깨우쳐 주려고 하늘이 천재지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재난은 자신의 허물이라 믿어
그래서 재난을 당하면 왕들은 “두려워하고 몸을 닦아 반성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참회의 나날을 보냈다.
조선 시대에는 가뭄이 3175건, 지진이 1951건, 바닷물이 붉게 변하는 적조 현상이 90건이나 일어났다. 왕들은 이 모든 재난을 자신의 허물로 돌리고 수신제가에 힘썼다니, 임금 노릇 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조선의 왕들은 재난을 당하면 사면령을 내렸다면서요?
현종은 자신이 왕위에 즉위한 이후로 해마다 가뭄이나 태풍과 같은 국가적 재난이 끊이지 않아 백성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자 1673년 사면령을 내렸다.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을 제외한 모든 죄수들을 옥에서 풀어 주었으며, 잘못을 저질러 파면당한 관리들도 복직시켜 주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거두어 들여야 할 베나 곡식 등의 세금을 모두 면제해 주고, 몇 년 동안 승진 못한 관리들은 재주에 따라 승진시켜 주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이 닥치는 것은 왕이 백성들을 잘못 다스려 하늘이 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자신이 나라를 잘못 다스렸다는 것을 뉘우치는 표시로 백성들에게 사면령을 베풀어 하늘의 꾸짖음에 답해야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사면령은 왕실에 결혼, 생일 등 경사가 있거나 왕의 장례식, 즉위식이 있을 때도 내려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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