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01 월간 제723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 장수, 조선의 명장 되다

1592년 4월, 일본군이 조선에 침략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한 조선인이 찾아와서 말했다.
“저는 일본군 장수 사야가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그가 장군님을 뵙기를 청합니다.”
“일본군 장수가 왜 나를 만나려는 거지?”
“장군님을 뵙고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사야가는 다른 일본인 장수들과는 달리 조선인들을 해치거나 재물을 빼앗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부하 병사 중에 조선인을 해치는 사람이 있으면 군율대로 엄중하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야가의 부대가 진주하는 곳에서는 모두가 편안히 생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일본인 장수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를 침략할 생각이 없는 듯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박진은 사야가를 만나기로 하고 심부름꾼을 돌려보냈다. 

어려서부터 조선 사모해

다음 날 정오에 인적이 드문 들판에서 통역관과 함께 사야가를 만났다.
사야가는 절을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조선을 사모해 왔습니다. 조선은 동방에서 이름난 예의의 나라이고, 학문과 도덕이 깊은 군자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주일 전인 4월 13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인 가토 기요마사의 부하 장수로서 3000명을 거느리고 부산에 상륙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조선의 문물을 접하고 ‘이제 내가 살 곳을 얻었다. 조선의 백성이 되어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에 부하들과 함께 조선에 귀순하고자 하니 저희들을 받아 주십시오.”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무기를 버리고 우리 진영으로 오시오.”
박진은 사야가와 그의 3000 군사를 받아들여 조선 군대에 편입시켰다.

‘김충선’이란 이름 하사받아

그 뒤 사야가는 경주, 울산 등지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으며, 정유재란 때는 의령 전투에 나가 많은 공을 세웠다. 이에 선조는 사야가에게 ‘가선대부’라는 높은 벼슬을 내리고 ‘김충선’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김충선은 전쟁이 끝난 뒤 경상도 달성군 가창면의 우록촌에 정착하여 장가들어 아들을 낳았다. 이로써 그는 우록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김충선은 조선에 귀화한 장수였기 때문에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여진족이 자주 침략하여 국경을 어지럽힌다는 소식을 듣고, 변방 방어를 자원하여 10여 년간 국경을 굳건히 지켰다.
그뿐만 아니라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 때에는 용맹스러운 이괄의 부하 장수 서아지를 한칼에 베어 버려 조선의 명장으로 이름을 드높였다.
1636년 병조호란이 일어났다. 김충선은 66세의 늙은 장수였지만 갑옷을 입고 전쟁터로 달려갔다.
그는 광주의 쌍령에서 청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는데 큰 승리를 거두었다.

조선 장수로서 많은 공 세워

김충선은 청나라 군사들의 코 500개를 베어 전대에 담았다. 그리고는 남한산성을 향해 달려가다가,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김충선은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예의의 나라 조선이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다니! 나는 한칼에 백만 대군을 무찌를 자신이 있는데, 앞으로 이 칼을 어디에 쓰랴.”
김충선은 칼을 던지고 우록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642년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 장수였지만, 50년 동안 조선인으로 살며 조선에 충성을 다한 명장이었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는 흑인 병사도 있었다면서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 때 이런 일이 있었다.
1598년(선조 31년) 5월 26일, 선조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군의 팽유격 장군을 찾아가 주연을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팽유격 장군은 자신의 군대에 신병(神兵)이 있다며 선조에게 한 흑인 병사를 소개했다.
“조선에서 15만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파랑국(포르투갈) 사람입니다. 파랑국은 바다 셋을 건너야 도착하는 호광의 극남에 있지요. 이 사람은 조총도 잘 쏘고, 모든 무술에 뛰어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신병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름은 해귀(바다 귀신)다. 눈동자가 노랗고 얼굴, 팔다리 등 온몸이 까맣다. 턱수염과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한데, 검은 양털처럼 짧게 꼬부라져 있다. 이마가 대머리로 시원하게 벗겨졌는데, 한 필이나 되는 누런 비단을 반도(3000년에 한 번 열린다는 전설 속의 복숭아)의 형상으로 머리에 말아 올렸다. 바다 속에 들어가 적선에 대한 공격도 하고, 며칠 동안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지낸다. 이런 사람은 중국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다.”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도시 속에서 농업·농촌 가꿔
다음기사   IFYE초청훈련, 우리 문화와 농업·농촌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