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01 월간 제723호>
<4-H인의 필독서> 슬픈 카페의 노래

자신의 모든 것 내어주는 지독한 사랑

어제 오늘, 노래 한 구절을 흥얼거렸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러다 문득 ‘정말?’이라는 의문부호를 지닌 생각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 바로 사랑!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랑, 좋다. 참 좋다. 그런데 그 좋은 사랑을 잊고 산지 오래다. 사랑을 잊고 현실의 충실한 종이 되어버린 내 자신과 멀어지고 싶어서 펴든 책은 카슨 매컬리스의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이다.
미국의 소설가인 카슨 매컬러스는 첫 장편소설인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으로 천재작가의 출현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뇌출혈, 심장발작 등의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자, 이제 ‘슬픈 카페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보자. 소설 속의 사랑은 어찌 생각하면 기묘하다. 도저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성립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마을은 황량하기 짝이 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작품을 읽다보면, 이 첫 문장이 주는 의미를 곱씹게 된다. 마을의 풍경이 황량한 이유, 그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미스 아밀리아이다. 그녀는 어릴 때 이미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었고 골격이 웬만한 남자보다 장대했다. 사팔뜨기에다 힘이 세고 싸움을 잘했던 아밀리아는 그녀에게 꼬마라고 불렀던 아버지가 죽은 후로는 누구와도 채무관계 외에는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다.
아니, 2년 동안 그녀를 짝사랑했던 마빈과 열흘간의 이상한 결혼이 있었다. 마빈은 180센티미터가 넘는 훤칠한 키에 근육질의 몸, 잿빛 눈, 곱슬머리를 갖고 있는 마을에서 가장 잘 생긴 남자였고 부자였지만 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많은 여자들이 그를 사랑했지만, 마빈이 애타게 원한 사람은 오직 사팔뜨기 아밀리아 뿐이었다.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기 바랐던 마빈은 아밀리아와 결혼했지만 열흘 만에 자신의 전 재산을 빼앗기고 심한 구타를 당한 후 쫓겨난다. 그리고 또 다시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감옥에 가고 만다.
아밀리아가 서른이 되던 해 4월 어느 고즈넉한 밤, 아밀리아 앞에 거지꼴을 한 꼽추 라이먼이 먼 친척이라며 찾아온다. 작고 왜소한 체구의 꼽추를 본 아밀리아는 첫눈에 그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아밀리아는 꼽추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해준다. 사람을 만나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꼽추를 위해 자신의 잡화점을 카페로 개조했고, 최고급 자동 피아노를 사들여 정식 카페의 모습까지 갖추게 된다. 이처럼 아밀리아가 사랑을 하면서 황량하던 마을은 활기를 찾게 된다.
그 후 4년의 시간이 흘러 감옥에 갔던 아밀리아의 전 남편인마빈이 마을로 돌아온다. 꼽추는 마빈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도록 아밀리아가 사랑했던 꼽추는 결국 아밀리아의 전 남편인 마빈과 함께 카페를 떠난다. 두 사람은 동이 트기 한 시간 전쯤에 마을을 떠났는데, 그 전에 아밀리아의 귀중품 진열장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가져갔고, 자동 피아노를 부수고, 카페의 테이블마다 무시무시한 욕을 새겼다. 그리고 아밀리아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소시지를 곁들인 밀죽에 그 지역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을 정도의 독약을 섞어서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아 카페의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그들이 횡포를 부리는 동안 아밀리아는 밤새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꼽추가 떠나는 게 두려웠던 아밀리아가 마빈의 횡포를 막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파괴해 버린 뒤 두 사람은 함께 도망쳤다. 그리고 아밀리아는 혼자 남겨졌다. 다시 혼자가 된 것이다.
“3년 동안 그녀는 매일 밤 현관 앞 계단에 앉아 홀로 조용히 앞쪽 길을 내려다보며 꼽추를 기다렸다. 그러나 꼽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마빈 메이시가 꼽추를 창문으로 올려 보내 도둑질을 시킨다거나 아니면 서커스단에 팔아먹었다는 소문이 들리긴 했다. (중략) 미스 아밀리아가 치허의 목수 하나를 고용해서 집을 판자로 둘러쳐서 막게 한 것은 꼽추가 떠난 지 4년째 되던 해였다. 그 후로 그녀는 그렇게 완전히 폐쇄된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 마을은 황량하기 그지 없다”
참으로 지독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고 이렇게 지독한 파멸에 이르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사람에게는 망각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랑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치유된다. 그러니, 아밀리아처럼 깊이 사랑하기를 꿈꾼다면 ‘슬픈 카페의 노래’를 통해서, 마음껏 누리고 즐기고 만끽하며 9월내내 사랑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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