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 동문회 풍경 - 이동희 / 소설가
"남녀 동기끼리 나와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동문회
자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별천지 같다"
늘 이맘 때 마을의 축제가 열린다. 총동문 한마당 축제이다. 매곡초등학교 동문회인데 행사 내용은 주로 점심을 먹는 것과 하루 종일 술을 마시는 것,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이다.
6월 13일 일요일, 날이 좋았다. 비가 오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학교 마당에 천막을 치고 하는 행사이니 비가 오면 재미가 없다. 대개 이 무렵의 일요일을 택하여 날을 정하는 것은 여름이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지만 잠깐 동안의 농한기이기도 하다. 이때가 지나면 다른 농작물도 그렇지만 온 마을 면민 전체가 포도와 복숭아에 매달려야 한다. 어쩌면 이 때 쯤 해서 한번 충전을 하는 행사로서 마을 축제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면민들이 다 매곡초등학교 동문이다. 천덕초등학교가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이쪽으로 합치고 그 자리에서는 무슨 노동단체의 수련장이 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중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이 되기도 했지만 안 가는 사람이 없고, 대학교도 실력이 없어서 못 가지 형편이 안 되어 못 가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옛날-6.25사변 전후만 하더라도-에는 초등학교에도 다 못 갔던 것이다. 그러나 웬만하면 다니게 되었고 동문이라고 하였지만 여기 동문회 마당에 졸업장을 가지고 참석하는 것도 아니었다. 중퇴라고 할까 졸업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 때 형편을 생각해보라. 좌우간 할머니 할아버지, 심한 경우는 허리가 다 꼬부라지고 휠체어를 타고도 생각만 있고 기운만 있으면 이 한마당에 다 참석을 한다.
아침 10시에 면장, 교장, 동문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주관을 하는 36회 동문들이 유니폼을 차려 입고 개회식을 하였다. 이번 총동문회장은 박우양 전 체육회장이다. 얼마 전 지방선거에 도의원으로 출마하여 떨어진 경력이 있다. 여당 공천을 받아 기호 1번을 달고 뛰었지만 여기 충청도에서는 세종시다, 4대강이다 하여 야당이라고 할까 충청도 당의 바람이 세었다. 그건 그렇고 대회사, 격려사, 축사 등의 의식적인 순서가 끝나면 바로 식당으로 몰려가서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먹는다. 점심때가 되면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당에서는 물론 프로그램대로 행사가 진행된다. 아직 운동장은 한산하고 썰렁하다.
대개의 동문들은 점심시간에 맞추어 와서 밥부터 먹고 한 잔씩 하며 잔뜩 돈을 들여 만든 무대 위에 펼치는 초청 가수, 밴드 공연 등 눈요기를 하고 오랜만에 동창과 동기들의 얼굴을 만나 담소를 한다. 식사는 학교 건물 뒤편 식당에 준비되어 있었고 운동장 가에 삥 둘러 천막을 치고 같은 동기 횟수끼리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여러 번 축적된 경험에서인가 금년에는 식당에서 술은 않고 식사만 하도록 하였다. 술과 다른 음료는 천막에 와서 느긋하게 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래야 그 많은 인원의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점심시간에 몰려 온 대식구를 달리는 수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인들, 젊은이들 할 것 없이 주욱 늘어선 풍경이 보기 좋았다. 누구나 아무 특권이 없고 선후가 없이 오직 먼저 온 사람이 앞에 서는 것이었다.
“이거 뭐 아래 윗턱이 없네.”
“자, 그럼 내 앞으로 와여.”
그래 봐야 한 두 자리 양보를 받을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런 거여.”
“그런 거여?”
모두 웃고 얘기하는 동안에 차례가 왔다.
식사는 올갱이국밥이다. 여러 가지 반찬과 전, 떡, 과일 등은 셀프 서비스로 담아 와야 했다. 물도 셀프이고 차나 음료, 술은 밖에 차려 놓았다. 뭐니 뭐니 해도 식사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매곡초등학교 11회 동문들이 이제 제일 상석이었다. 거기서부터 앉는 순서가 되어 있었다. 그 앞 회기의 동문들은 본부석 옆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몇 명 되지 않았다. 작년 재작년에 만나던 4회 6회 얼굴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명을 달리 하기도 하였지만 아프기도 하고 귀찮아서 집에 있기도 하였다. 그는 11회이다. 전쟁이 나던 때에 졸업을 하였으니 벌써 60년이 되었다. 그래도 얼굴들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야는 참 형편없었어. 너 1번이었어. 2번인가.”
“별명이 할마이 아이라?”
“너는 돼지 나발이지?”
별명이 없었다는 것은 유명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하나의 웃음거리밖에 안 되지만 그 때는 참 심각하였다. 특활 시간에 팥죽 할마이 얘기를 한 것이 일약 별명이 되었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할마이 뭐가 스물다섯 개라는 것이고 그것이 자꾸 늘어났다. 싸움이 되고 얼굴에 생채기가 생기고…. 그런 것들이 다 녹화되어 보존되어 있는 곳이 시골 동문회이다.
몇 십년 째 총무를 맞고 있는 박내곤은 결산보고를 그 특유한 글씨로 써서 복사한 것을 오는 사람마다 나눠 주며 술을 따라 준다. 소주와 맥주에 돼지고기, 마른안주 등이 탁자에 그득하다. 모두들 맥주만은 맛이 없다고 소주를 타서 먹었다. 총무는 소주파다. 이제 술을 탐하는 사람은 없다. 밑 빠진 독인 유재우도 뒷전에 물러나 자꾸 손만 저었고, 남득섭은 먼 길을 가고 안 보였다. 서울서 봉고차로 오던 여자 동문들도 금년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안 왔다. 같이 냇가로 가서 2차, 3차 하던 것도 이제 없다.
“내년에 또 봐.”
그것이 제일 실감 나는 인사였다.
동문회 한마당에는 경품이 많았다. 자전거도 있고, 휴지 뭉치도 있고 생활에 유용한 상품들을 무대 앞에 잔뜩 쌓아 놓고 연방 추첨을 하였다. 회비를 1만원씩 내고 모자를 하나씩 주어서 썼고 기념품도 받았다. 무대에서는 언제부턴가 노래 경연을 벌이고 있었다. 흘러간 옛노래도 많았지만 요즘 가수 뺨치는 끼가 난무하였다.
박수에 폭소에 축제 마당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걸물이어서 계속 웃기었고 청중을 주름잡았다. 노래도 마음대로 시켰고 경품도 마음대로 주었다.
“왜 내 맘이여.”
경품을 주다가 빼앗아도 할 말이 없었다. 웃음이 터질 뿐이었다. 노래를 진행하며 이 사람 저 사람 명분을 붙여 유명 동문들을 불러 올려 경품 추첨을 시켰고 한 마디씩 하게 하였다. 솔직하고 소박한 몸짓들이 원색적으로 연출되었다. 한 마당 축제는 전날 밤 전야제부터 시작하여 노래와 춤의 마당을 이루었다. 춤 솜씨가 보통이 아니고 시골구석 사람들 같지 않았다. 남녀 동기끼리 나와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자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별천지 같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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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끼리 같이 앉아서 한 잔씩들 하며 옛날이야기를 한다. 벌써 60년 전의 재학 시절 누가 공부를 더 잘 했고 누가 제일 앞에 섰고를 따진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그 때는 키순으로 출석번호를 정했고, 아침 조회 때도 키가 작은 사람부터 서서 ‘앞으로 나란히’를 하였다. 이제 그런 서열은 없고 무엇보다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다행인데, 해마다 안 보이는 동문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매곡초등학교 11회기들이 앉은 좌석에서 본 동문회 한마당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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