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1 월간 제721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조선은 대식가들이 사는 나라?

한말에 조선을 다녀간 외국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었다. 조선은 대식가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스페인,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조선에 대한 선교 보고서를 자기 나라에 보내며 “조선은 대식가들이 사는 나라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19세기 말에 조선을 네 번이나 다녀간 영국의 여성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자신의 여행기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 사람들은 엄청나게 먹는다. 영국의 노동자들보다 훨씬 많이 먹는 것 같다.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들도 많이 먹는다. 여성들은 남편이 먹다 남긴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워야 하기에 많이 먹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중략)… 많이 먹는 훈련은 이미 어린 시절에 받는 것 같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극성스럽게 밥을 먹인다. 선 채로 더 이상 먹이지 못하면 아이를 들쳐 업고 계속 먹인다. 밥을 먹이면서 수시로 불룩한 배를 숟가락으로 찔러 보는데, 배가 팽팽해질 때까지 억지로 밥을 먹인다. 어른들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의 성인 남자들은 식사를 끝내면 “꺼억!” 하고 꼭 트림을 하고 배를 두드려, 배부르게 잘 먹었음을 은근히 과시한다.”
‘딜레’라는 선교사가 쓴 ‘조선 교회사 서설’이라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 사람들의 약점이라면 폭식을 들 수 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양반이든 천민이든 가리지 않고 많이 먹는다. 이들은 음식의 질보다 양을 중요시하기에 음식을 먹을 때는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했다가는 음식을 덜 먹게 되기에 묵묵히 숟가락질만 한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무릎에 앉힌 채 열심히 밥을 먹인다. 그러다가 이따금 숟가락을 거꾸로 든 채 아이의 배를 찔러 본다. 배가 탱탱해졌는지 알아보려고 말이다.”
그렇다면 조선 사람들은 하루에 얼마나 먹었을까? 순조 때의 실학자인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에서 밝히기를, 해가 짧은 다섯 달(음력 9월에서 이듬해 정월까지)은 아침 저녁 두 끼만 먹고, 해가 긴 일곱 달(2월에서 8월까지)은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먹었다. 그런데 성인 남자 중 많이 먹는 사람은 한 끼에 쌀 7홉, 하루 두 끼 1되 4홉을 먹고, 성인 여자 중 많이 먹는 사람은 한 끼에 쌀 5홉, 하루 두 끼 1되를 먹었다. 그리고 아이는 한 끼에 쌀 2홉, 하루 두 끼 4홉을 먹었다. 요즘 사람들보다 세 배는 더 먹었던 것이다.
조선 사람들에 비해 다른 나라 사람들은 훨씬 적게 먹었나 보다. 임진왜란 당시 서울이 20일 만에 일본군에게 함락되었을 때, 조선군은 일본군의 식량 사정을 알아보라고 서울로 몰래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돌아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식량 사정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일본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도 하루 세 끼 1되밖에 먹지 않는걸요.”
이런 보고를 받고 조선군 진영은 일본군이 앞으로 오래 못 버티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정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보다 적게 먹어서, 한 끼에 겨우 쌀 두어 줌밖에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종 때 이극돈이라는 관리는 가뭄이 든 전라도 지역을 다녀와서 이렇게 한탄했다.
“조선 백성들은 풍년에 곡식을 아끼지 않고 먹어 흉년에 더 고생하는 거야. 한 끼에 중국사람 하루분의 식량을 먹어치우니….”
한말에 6조 관리들의 점심시간은 굉장했다. 나라 살림이 어려워져 관리들에게 점심을 주지 않게 되자, 고위 관리들의 집에서는 하인들이 교자상을 차려 점심을 관청까지 날랐다. “대감 밥상 행차시요!” 하고 무관이 앞에 서서 외치면, 하인과 하녀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날라 온 음식이 엄청나게 많아서 판서, 참판이 먹고 나면 그 상을 물려 정랑, 좌랑이 먹고, 또 그 상을 물려 아전이 먹고, 또 그 상을 물려 하인들이 먹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낮 12시에 시작된 점심은 오후 4시가 되어야 끝났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먹었으니, 조선은 대식가들이 사는 나라라는 말을 들을 만도 하겠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 역사 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대식가는 누구인가요?

세조 때 대호군을 지낸 홍일동이 첫손 꼽히는 대식가다. 그가 하루는 북한산에 있는 진관사에 놀러 가서 떡 한 그릇, 국수 세 그릇, 밥 세 그릇, 두부국 아홉 그릇을 먹었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배가 차지 않았는지 북한산에서 내려와 또 정신없이 음식을 챙겨 먹었다. 이번에는 찐 닭 두 마리, 생선국 세 그릇, 생선회 한 접시, 술 아홉 바가지를 먹은 것이다.
세조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구나. 홍일동은 역시 장사야.”
이런 대식가가 평상시에는 밥을 먹지 않고 독주와 쌀가루를 먹었다고 한다.
신라의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하루에 꿩을 아홉 마리나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김춘추도 소문난 대식가여서 꿩 아홉 마리에다 쌀 세 말을 하루에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백제를 무너뜨린 660년 이후에는 아침 저녁 두 끼만 먹었는데, 그 양이 또 엄청났다.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두 마리를 먹어치웠다.
홍일동과 김춘추를 불러 놓고 먹기 시합을 벌인다면 누가 이길까? 역사에 길이 남을 굉장한 시합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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