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1 월간 제721호>
<4-H인의 필독서> 나는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나를 비우는 것

나이 듦의 즐거움이 있다면,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홀로 걷는 길. 그 길에서 나는 깨닫는다. 커다란 배낭이 나의 욕심이라는 사실을. 욕심을 비워 가벼워진 후에야 걷기는 행복해진다.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마주 걸어오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넬 여유가 생긴다. 이처럼 혼자 걷기의 기쁨과 고통을 토로한 사람이 있었으니,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쓴 베르나르 올리비에이다.
30여 년간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와 잡지사에서 활동한 그는 은퇴 첫 해인 1997년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향하는 2325km에 달하는 길을 배낭을 메고 걷는다. 이 여행은 그를 바꿔놓았다. 좀 더 오래, 멀리 걷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된 올리비에는 콤포스텔라 길 끝에서 그는 자신이 가야할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과 문명의 길, 실크로드. 그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을 잇는 1만 2000km를 1년에 3개월씩 나눠 걷기로 계획한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에는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그렇다. 이 책은 만만치 않다. 400쪽이 넘는 책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고 겁먹지는 마시라. 간단명료하고 맛깔난 문장으로 씌어져 쉽고 재미있어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다.
1099일간 이어지는 혼자 걷기를 시작하면서 그는 예전의 대상로를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기로 한다. 과거 낙타들이 다녔던 길은 20세기 초에 길이 난 후 지금은 고속도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소란스러운 엔진소리와 배기관에서 뿜어내는 악취와 더불어 여행을 시작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에 그는 보스포루스를 거슬러 올라가는 우회로를 선택한다. 대상들이 걸었던 길 그 자체보다는 정신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보여행 첫날부터 그는 통증에 시달린다. 발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배낭 끝에 어깨가 쓸려 아팠다. 어깨가 아플 거라는 사실은 예견했었다. 짊어진 짐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짐을 쌀 때도 되도록 무게를 줄이려고 열 번이나 풀었다 다시 쌌지만, 그의 배낭은 15kg이나 됐다. 혼자 하는 여행의 짐은 나눠 질 수 없기에 더 무겁다. 하지만 짐이 무거우면 여행은 고통스러울 수밖에는 없다.
처음 계획은 하루에 18내지 25km 정도를 걸을 예정이었지만 그는 평균 30km 이상을 걸었고 그로 인해 발은 엉망이 되어갔다. 등산화의 접힌 부분에 자극을 받아 상처가 생겼는데 거기서 누런 고름이 흘러나왔고 걸을 때마다 자극을 받아 주위의 피부는 부어올랐고 너덜너덜해졌다. 그 순간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 햇빛과 비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고, 걷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 도보여행의 모든 결과는 정직하다. 몸 전체를 던지는 일이다. 내 몸을, 내 기억과 약과 옷, 식량, 침낭을 짊어질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중략) 혼자 걷는 이상 그 무엇도,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낯선 언어와 엉터리 지도 그리고 내가 택한 길로 인해 나는 고립 상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걸을 때마다 신발의 접힌 주름이 마치 단두대처럼 발톱을 조금씩 잘라내 발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지만 그는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베이쾨이에서 멈추지 않은 것을 슬슬 후회하기 시작한다.
“무엇이 나를 이렇듯 자꾸 더 멀리 가게 만드는 것일까? 내가 지닌 상식과 신중함은 분명 멈추라고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만 더, 좀 더 멀리, 내 안에 억누를 수 없는 원초적인 충동이라도 있는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중략) 나를 걷고 또 걷게 만드는 이 격렬한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얼마나 버티는지 시험해보려는 그리고 기록을 깨보겠다는 어쭙잖은 허영일까? 아니면 오만? 의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는 이 통제되지 않는 충동은 자신이 애써 숨기려고 하는 어떤 두려움과 뒤섞어 있다고 고백한다. 끝까지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수전노가 동전을 긁어모으듯 1km라도 더 모아두는 것이다. 한 걸음이라도 걸을 수 있는 한 그리고 배낭을 짊어질 힘이 남아 있는 한, 목표에 이르길 갈망하면서 걷고 또 걷는 것이다.
사실 혼자 하는 도보여행은 힘들다. 육체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홀로 걷는다는 정신적 외로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길 위에서 만나는 이들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을 비우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길을 떠나기 전, ‘나는 걷는다’를 펼치시라.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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