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1 월간 제720호>
매화골 통신 ④ 종은 언제 울릴 것인가

- 온유향에서 -    이동희 / 소설가

"교회라는 것은 원래 그랬듯 하나의 공동체이다
예배 후, 농사짓는 사람들의 토론의 장이 된다"


하루 한 번도 울리지 않는 종루가 두 개가 있다. 마을 가운데 자리한 매곡교회, 여기서 새벽 4시만 되면 어김없이 댕그렁 댕그렁 종을 쳐서 농촌 마을을 깨웠다.
그것이 소음으로 들리는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했고 곤히 자는 잠을 깨운다고 불평을 하여 언젠가부터 차임벨로 대신하였다. 새벽 기도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끈을 잡아당겨 종을 치던 종루는 사택 앞에 지붕보다 조금 높게 세워져 있고 차임벨은 교회의 첨탑 근처 어디에 높이 매달아놓은 것 같다. 종이나 벨은 두 번 간격으로 울렸다. 처음 울려서 잠을 깨우고 30분 후에 이제 나오라고 다시 울렸다. 한 번에 여러 번, 헤아려 보지 않아 횟수나 시간은 정확하지 않으나 한참 동안 울렸다. 그것을 맡은 사람도 꼭 같이 시간을 재거나 헤아려서 치고 울리는지 모르지만 대략 한 5분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새벽에 교회에 기도를 하러 오라는 시간을 알리는 것이지만 마을의 새벽을 알리고 잠을 깨웠다. 경우에 따라서 참으로 반갑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소리가 되기도 하고 시끄럽고 공해로 들리기도 하였다. 골목에는 날만 새면 고물을 팔라는 소리부터 과일 장수, 생선 장수, 백화점처럼 가짓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건을 싣고 다니며 하나하나 품목들을 다 주어 섬기는 소리, 많은 행상들의 확성기로 반복하여 틀어대는 소리에 시달리는 농촌 골목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제 교회에서 새벽을 깨우는 소리는 없다. 종 칠 일이 없으니 종지기도 있을 필요가 없다. 산사에서는 새벽을 알리는 그 둔탁한 효종이 지금도 울리는지 모르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꼭두새벽에 시간을 맞추어 종을 울리던 종지기의 부지런하고 수고로운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새벽 종 얘기가 길었다. 교회가 있는 마을 풍경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최근에 노래와 안골 사이에 새 교회가 하나 들어섰고 원래 강진리에 교회가 하나 있다. 매곡장로교회 교인 전체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일이면 100명 가까이 모인다. 대개는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다.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많다. 그래도 젊은 여인들이나 청년이 몇 명 되고 학생들도 여러 명 되었다. 주로 면 소재지인 노래 사람들이고, 모른대 서원마 유전리 옥전리 안골 장자올… 물 건너와 골짜기에서 승용차, 화물차, 자전거, 오토바이 등 자가용을 몰고 오기도 하고 편승을 하기도 하고 타박타박 걸어오기도 한다. 교회 봉고차로 가서 데려오기도 한다. 장성일 장로가 운전을 하기도 하고 다른 집사가 할 때도 있다. 농촌에도 차가 많고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최근엔 빔프로젝트 같은 것도 설치하여 두툼한 성경책이나 찬송가는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다 찾아서 비춰준다. 얼마 전에는 피아노 칠 사람이 없어서 그냥 놀리고 있었지만, 새로 젊은 전영근 목사가 오고부터는 사모-목사 부인을 일컫는 말이다-가 반주를 한다.
교회라는 것은 원래 그랬듯이 하나의 공동체이다. 어려운 일, 힘든 일을 함께 하고 여러 기구에 의해서 협력한다. 대표적인 것이 장례이다. 죽음이란 끝이요 절망인데 교인들이 모두 가서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찬송가를 부르며 영생의 희망을 축원한다. 설교가 끝나고 교회 소식을 전하는 시간에 공식적인 것은 얘기하고 예배가 끝나고 식사들을 하는 시간에 얘기하기도 한다. 커피도 한 잔씩 하고. 그 자리에서는 교회에 대한 얘기도 있지만 농사에 대한 정보와 의견들을 주고받기도 한다. 모를 언제 찌고 심는다느니, 늦어서 큰일이라느니, 또 콩을 언제 심어야겠다느니, 하우스를 걷어냈다느니 뭘 어떻게 하면 어떠냐고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물어보기도 하고 방법을 얘기하기도 하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각론에 대한 토론의 장이 된다.
“고치하고 들깨 모종이 좀 남았는데 필요하면 가져들 가여.”
“가지는 없어여?”
“말만 잘하면 있지.”
서로 유익한 정보들이요 나눔이다.
천안함 얘기도 하고 6.2선거 얘기도 나왔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여론이 형성되었다.
앞집은 상리 마을회관인데 거기서도 모이면 농사 얘기 시국 얘기들을 한다. 같이 국수나 묵밥, 콩나물밥을 해서 먹기도 하고 술을 한 잔씩 하기도 하고, 누구 잔치 음식 제사 음식을 가져 와서 나눠먹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잔치는 있으나 제사는 없다. 술도 먹지 않는다. 성경에 무수히 나오는 포도주라고 하더라도 이 포도의 고장에서마저 금기사항이다. 돼지고기라든지 닭고기 같은 기름진 음식이 나올 때라도 다른 음료수로 대신한다. 교회에서 유일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은 1년에 한두 번 성찬식 때인데 포도주를 도토리 깍지만한 잔에다 1인 1배씩만 돌린다.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말한 대로 술이 아니라 피를 마시는 것이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양이다.
교회 나가는 사람과 나가지 않는 사람의 구별은 믿는 자와 안 믿는 자의 이분법적 시각이다. 하늘의 나라 백성과 땅의 나라 백성들이라고 할까,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지만 천국을 믿는 것이요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든 어디로 가든 불지옥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기보다 관심이 없는 것이다. 공자의 말과 같이 ‘이 세상 일도 모르는데 저 세상 일을 어찌 알겠는가’라는 생각인지 모른다. 불교 신자들도 있다. 토실에 금강사가 있고 앞산 황악산 너머 직지사로 가는 버스도 있고, 그 산 줄기인 건천산 자락 강진리에 영축사 절이 있어 4월 초파일 전후에 많은 연등을 달아 놓았다. 물론 다른 교의 신자들도 있다. 매곡면 2165명 인구 가운데 종교인이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내세도 없고 같은 말인지 모르지만 희망도 없고 오늘에만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인가. 무슨 삶의 논리가 따로 있는 것인가. 그 개개인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 모두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이 사는 온유향(溫柔鄕)인 것은 맞다. 그러나 언제나 진정한 행복의 종이 마을의 새벽을 깨울 것인가. 낡은 옛 종루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꽃피는 봄을 맞아 연례행사의 하나로 소풍을 겸해 야외 예배를 상촌 물한리 계곡으로 가서 보았다. 교회 차로 목사가 몇 번 왕복을 하여 교인들을 태워 실어 날랐고, 미리 화물차로 솥단지와 음식을 날라다 준비를 하여 떡과 고기, 과일, 음료수 등을 대령해 놓았다. 아이들도 다같이 모였다. 참 아름다워라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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