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01 월간 제720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귀신과 맞서 친구를 구한 이항복

조선 시대 때 명재상으로 이름 높았던 이항복에게는 어려서부터 사귄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재상의 아들로서 이웃에 살아 서로의 집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다. 두 사람은 어른이 된 뒤에도 서로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 앓아누워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다. 병치레가 심해 앓아눕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친구가 장가를 든 뒤에는 죽을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친구의 아버지인 재상은 보다 못해 점쟁이를 집으로 불렀다. 사람의 죽고 사는 일을 귀신같이 알아맞힌다는 점쟁이였다. 족집게로 꼭꼭 집어내듯 잘 알아맞힌다고 해서 ‘족집게 점쟁이’로 이름 높았다. 점쟁이는 점을 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아드님은 얼마 못 살겠군요. 죽을 날이 정해져 있어요.”
“여보게. 내 아들을 살려 주게. 죽을 날을 알 정도로 신통력을 가진 자네라면, 내 아들을 살릴 방법도 알 것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도저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입을 열었다간 제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때 재상의 며느리가 점쟁이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말했다.
“서방님을 살릴 방법을 알고 있다면 어서 말해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면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겠어요. 서방님이 죽게 되었는데, 내가 살아서 뭐 하겠어요?”
“할 수 없군요. 어차피 제가 죽어야 할 운명인가 봅니다. 이 댁 아드님을 살릴 방법을 말씀드리지요. 아드님의 친구 가운데 이항복이라는 사람이 있지요? 아드님을 살리려면 그 친구를 데려와야 합니다. 아드님 곁에 두고 밤낮없이 지키게 하십시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게 하면 안 됩니다. 제가 아드님이 죽을 날을 말씀드렸지요? 그 날까지 끈질기게 버틴다면 아드님은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아드님이 목숨을 건지는 날 죽을 것입니다. 제 가족들을 부탁드립니다.”

밤낮없이 아픈 친구 곁 지켜

점쟁이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 재상은 바로 이항복을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점쟁이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고, 이항복으로 하여금 아들 곁을 밤낮없이 지키게 했다.
드디어 점쟁이가 말한, 친구가 죽는다는 그 날이 돌아왔다. 날이 저물자 친구는 정신을 잃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때 별안간 한 줄기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항복 앞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얼굴에 피를 흘리는 귀신이 나타났다. 귀신은 이항복에게 칼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비켜라! 그 환자를 데려가야겠다. 그는 내 전생의 원수다.”
“누구 맘대로! 이 친구를 내줄 수 없다. 그만 돌아가라.”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 어서 비켜라! 말을 듣지 않으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
귀신은 금방 칼을 찌를 듯 하다가 그 자리에 엎드려 울면서 말했다.
“도련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환자를 넘겨주십시오.”
“나를 죽인다더니 왜 칼로 찌르지 않느냐?”
“도련님은 제가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입니다. 앞으로 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하니까요. 도련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환자를 넘겨주십시오.”
“아무리 사정해도 소용없다.”

귀신과 마주한 이항복

귀신과 이항복은 환자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는데,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새벽이 밝아온 것이다. 귀신은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방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으으, 원통하구나! 원수 갚을 기회를 놓치다니. 점쟁이 놈이 입을 나불거려 내 일을 망쳤어. 그놈을 그냥…….”
귀신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리고 점쟁이에게 분풀이를 하러 떠났다. 귀신이 떠나자 환자는 정신이 돌아왔다. 금세 병이 나아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닭 울음소리에 귀신 떠나가

그 날 아침, 점쟁이 집에서 연락이 왔다. 점쟁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재상은 손수 장례를 치러 주고, 점쟁이 가족에게 평생 먹을 양식을 주었다고 한다.
 〈신현배 / 아동문학가, 시인〉

조선 시대에 귀신들을 부하로 거느린 사람이 있었다면서요?

조선 시대 사람인 서평 부원군 한준겸에게는 전라도에 사는 먼 친척 총각이 하나 있었다. 한준겸은 이 친척 총각을 불쌍히 여겨, 서울로 올라오면 옷과 양식을 챙겨주고 자기 집에서 한 달 이상 묵어가게 했다.
총각에게는 귀신들을 부리는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그가 부하로 거느린 귀신이 수만이나 되었는데, 설날 아침에 귀신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모임을 갖곤 했다. 일일이 귀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귀신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귀신들이 제멋대로 날뛰어 사람들에게 큰 화를 입혔다고 한다.
총각은 고향 마을 앞산에 있는 절의 늙은 스님에게 그 재주를 물려받아, 열두 살 때부터 귀신들을 부렸다. 그는 20년 넘게 이 일을 해 왔다며 한준겸에게 처음으로 털어놓고, 한준겸의 집에서 설날 귀신들의 모임을 가졌다.
그 뒤 총각은 한준겸의 집을 떠나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는데,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절을 짓고 혼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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