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06-01 월간 제720호> |
|
<제3회 전국 학생4-H 과제발표대회 백일장 장려상 수상작> 차가운 겨울에도 도산서원의 숨결은 따뜻하다 |
방 민 희 회원〈경북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4-H회〉
전국 학생4-H 과제발표대회 둘째 날, 도산서원을 가게 됐다. 도산서원을 가기 전 도산서원이 어떤 곳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는 몰랐다. 책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가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퇴계 이황 선생은 교과서에 나와 있듯이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신 분이다. 또한 학문연구, 인격도야, 후진양성에 힘써 이 나라에 교육 및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셨고, 만대의 정신적인 사표가 되셨다.
퇴계 이황 선생은 명종 16년에 도산서당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1970년에는 정부에서 서원을 보수·정화하여 성역화했다.
도산서원의 정문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본 건물이 도산서당이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그곳에서 생활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곳이다. 이황 선생께서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라는 곳이었고, 마루는 ‘암서헌’이라고 불렀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농운정사였다. 이곳은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이 시대에도 기숙사란 것이 있다니 신기했다.
그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이 전교당이다. 이곳은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도산서원의 사액현판이 게시되어 있으며,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나는 전교당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다가 멍하니 넋을 잃었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즐겁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다른 건물들보다 조금 더 허름한 건물이 보였다. 그곳은 장판각으로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선조어필, 퇴계 선생 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을 보관했던 곳이다. 지금 이 목판들은 2003년 5월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되어 있는 상태다.
이번에는 상덕사를 들어가게 됐는데 그곳은 이황 선생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었다. 선생의 위패와 함께 제자인 월천 조목의 위패도 함께 모셔져 있었다. 매년 봄, 가을(음력 2월, 8월)에 향사를 지낸다고 한다.
또 가보지는 못했지만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시사단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정조 임금이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어명으로 특별과거인 보산별과를 치르던 장소이다.
도산서원을 다 돌아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도산서원을 나오면서 이황 선생께서 가르치시던 사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그 사상은 ‘이’로 ‘기’를 다스려 인간이 선한 마음을 간직해 바르게 살아가고, 모든 사물을 순리대로 운영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으로 이것을 사단(四端)으로 말씀하셨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겸손히 타인에게 사양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마지막으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을 말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바로 사단의 내용이다.
현대인들은 반드시 이 사단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단만 늘 생각한다면 이기주의처럼 자기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사상이야말로 우리들이 잘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산서원에 가서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해서 공부하고 좋은 경치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또 퇴계 이황 선생의 사상과 이념이 우리 4-H의 이념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4-H가 너무 자랑스럽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