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 형제들을 읽으면서
이정우 지도자 <제주특별자치도 4-H본부>
고전에는 국유사유(國有四維)란 말이 있다. 나라에는 ‘國(나라국)’자의 네모진 권투경기장의 울타리처럼 네 개의 큰 밧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중 한 개의 밧줄이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一維絶則傾), 두 번째 밧줄이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로우며(二維絶則危), 세 번째 밧줄이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히고 (三維絶則覆), 네 번째 밧줄마저 끊어지면 나라가 멸망한다(四維絶則滅)고 했다.
이 글에는 친절하게도 처방까지 나와 있다.
“나라가 기울면 바로 잡으면 되고(傾可正也), 넘어졌어도 일으켜 세우면 된다(覆可起也). 그러나 멸망한 것은 다시 회복할 수가 없다(滅不可復錯也)”고 하였다.
그렇다면 네 개의 밧줄이란 무엇인가.
첫째의 밧줄은 예절이고(禮), 둘째의 밧줄은 의리이며(義), 셋째의 밧줄은 청렴과검소함이고(廉), 넷째의 밧줄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恥)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러한 것들을 왜 밧줄이라고 표현했을까?
밧줄이란 여러 개의 실이 모여서 하나의 큰 끈을 이루는 것이다. 가족 하나하나가 모여서 한 가정을 이루고, 한 가정 한 가정이 모여서 동네(사회)가 되고, 갖가지 사회단체들이 모여 한나라를 이루듯이 말이다.
예절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해야하는 의무가 아니라 부모는 자식에게, 관리는 국민에게 먼저 자기의 예절을 지켜줘야 아랫사람들이 이를 본받아 따르는 것이다.
또 의리란 서로 사심이 없이 공평함 가운데 화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禮)와 의(義)는 점차 회복시킬 수 있고, 청렴(廉), 결백(恥)함도 바로 잡아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잘못하면서도 잘못한 줄 모르고, 무식하면서도 무식한 줄 모르고 외쳐대는 나라나 사회단체는 물론, 한 가정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선현들의 가르침에 각자 겸허한 자세로 자신들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의 눈에 박힌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이의 티끌을 탓하는 오류를 벗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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