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01 월간 제719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부자를 공포에 떨게 한 화적 떼

개화기 때 어느 시골 마을에 부자가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자기 고을에서는 첫손 꼽히는 부자였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 엄청나게 많았고, 창고에는 곡식과 재물이 그득했다. 또한 그가 거느린 노비가 수십 명에 이르렀다.
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큰 부자였지만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이웃 고을에 화적 떼가 나타났다는데 우리 집을 습격해 오면 어떡하지? 그들은 집에 불을 지르고 재물을 모조리 약탈해 간다는데.’
부자는 이런 걱정 때문에 밤에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화적 떼에게 어이없이 당하지 않으려면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포사들에게 우리 집을 지키게 하는 거야.’
부자는 이렇게 결심하고 그 고을 수령을 찾아갔다.
“요즘 화적 떼가 자주 나타난다던데, 저도 그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자위대를 만들어야겠습니다. 포사들을 내주시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요사이 시골 부자들치고 자위대가 없는 사람은 드물지요.”
고을 수령은 고용 경찰이라 할 수 있는 포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부자는 수령에게 재물을 주고 포사들을 집으로 불러 밤낮없이 자기 집을 지키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화적들은 변장술에도 뛰어나 포사들을 수백 명 동원하여 집 주위에 아무리 삼엄한 경계망을 펴도 이들의 침입을 막을 수 없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부자는 생각다 못해 염탐꾼을 두기로 했다. 화적들과 통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어 화적들의 동태를 날마다 알아오게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염탐꾼이 중요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어르신, 화적 떼가 오늘 밤에 어르신 댁을 습격하기로 했답니다.”
“그래? 알려 줘서 고맙네. 수고했어.”
부자는 꾀가 많은 사람이었다. 화적 떼의 습격을 받기 전에 선수를 치기로 했다. 그는 이웃에 사는 가난한 농부를 찾아가 말했다.
“자네가 나를 도와주어야겠네. 밤이 되면 자네 집에 불을 지르고 ‘불이야!’ 하고 소리치게. 그러면 내가 바로 집을 새로 지어 주고 수고비도 따로 주겠네.”
부자는 농부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염탐꾼이 알려 준 화적 떼가 습격해 온다는 시간이 되자 농부는 부자가 시킨 대로 자기 집에 불을 질렀다.
“불이야, 불이야!”
농부가 이렇게 소리치자 마을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그들은 힘을 합쳐 불을 끄기 시작했다.
이때 부잣집을 습격하러 마을로 내려온 화적들은 얼른 발길을 돌려 달아나 버렸다. 그리하여 부자는 화적 떼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화적은 횃불을 들고 부잣집을 습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말을 타고 떼 지어 몰려와 불을 지르고, 화승총을 쏘며 재물을 약탈하기 때문에 부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개화기 때 부잣집을 노리는 화적은 주로 승려 노릇을 하다가 환속한 무리와 보부상을 하다가 강도로 변신한 무리가 대부분이었다. 직업상 이 마을 저 마을 안 가본 곳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어느 마을에 어떤 부자가 사는지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의 표적이 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화적 떼는 1862년 무렵부터 전국적으로 출몰하더니, 철종·고종 때에 특히 많이 나타났다.
 〈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 ‘화적 5도’라고 해서 화적 떼도 도의를 지켰다면서요?

개화기 때 화적은 의(義), 인(仁), 예(禮), 신(信), 효(孝) 다섯 가지 도를 지켰다고 한다. 쌀 100석이 넘는 부잣집만 습격했는데, 그 중에서 인심 좋다고 소문난 집은 털지 않았으니 의(義)다. 그리고 병을 앓는 늙은 부모가 있으면 말없이 철수했으니 인(仁)이고, 관혼상제가 있는 집은 피해 갔으니 예(禮)이며, 관가에 신고하지 않고 재물을 순순히 내놓으면 불을 지르지 않았으니 신(信)이다. 또한 불을 지르기 전에 그 집 신주를 치우게 했으니 효(孝)다.
화적 중에도 5도를 지키지 않은 무리는 ‘개화적 떼’라고 불리었다. 화적도 못 되는 가짜 화적이라고, 화적조차 이들을 막돼먹은 무리라며 손가락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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