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01 월간 제719호>
<4-H인의 필독서>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

편지함에 우편물이 넘쳐나지만, 봄날 같은 마음 담긴 편지를 받아본지 오래다. 광고성 우편물이 대부분인 탓이다. 인생이 내내 삭막하여 다정한 편지가 그리운 이 봄, 200여년 전의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책은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지원의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이다. ‘열하일기’ ‘연암집’ 등으로 잘 알려진 대문호 ‘박지원’과 ‘고추장 단지’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서른세 통의 편지를 읽노라면 ‘사람 박지원’을 만나는 박하사탕 같은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연암이 60세 되던 1796년 정월에 시작되어 이듬해 8월에 끝나고 있는 이 편지들은 연암 박지원의 문집인 ‘연암집’에 실려 있는 편지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겉치레 없이 속을 드러낸 사적이고 진솔한 글이 대부분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는 자식을 걱정하고, 자식은 그 마음을 무심히 지나치는 것이 한결같다고 생각케 하는 편지 한 통을 소개한다.
“너희들이 하는 일 없이 날을 보내고 어영부영 해를 보내는 걸 생각하면 어찌 몹시 애석하지 않겠니? 한창 때 이러면 노년에는 장차 어쩌려고 그러느냐? 웃을 일이다, 웃을 일이야.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를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완전히 익지는 않았다.”
이 편지에는 자식이 더 열심을 다해 공부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연암의 마음이 담겨있다. ‘장차 어쩌려고 그러느냐?’ 호통을 치다가, 자식 걱정에 손수 담근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낸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연암은 51세에 부인 이씨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재혼을 하지 않았다. 호방한 풍모를 지녔지만 잔정이 많았던 연암은 손님이 오면 손수 쌀을 씻어 밥상을 차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들의 무심함에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는 아버지 연암이 드러난 편지를 골랐다.
“ 큰아이에게.
너의 첫 편지에서는 “태어난 아이가 미목(眉目)이 수려하다”고 했고, 두 번째 편지에서는 “차츰 충실해지는데 그 사람됨이 그리 평범치 않다”라고 했으며, 간(侃)이의 편지에서는 “골상이 비범하다”고 했다. 대저 이마가 넓다든지 툭 튀어나왔든지 모가 졌다든지, 정수리가 평평하다든지 둥굴다든지 하는 식으로 왜 일일이 적어 보내지 않는 거냐? 궁금하다. (중략) 전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간에 반찬으로 하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중략) 고추장은 내 손으로 담근 것이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물건을 인편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연암 박지원이 큰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지방 수령으로 내려와 있는 동안 큰손주가 태어났다. 연암은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 보지 못하는 손주에 대한 그리운 마음과 함께 고추장 등 여러 밑반찬을 애써 보내줬건만 좋다 싫다 아무 답이 없는 아들에게 ‘무람없다’며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하였다고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고, 자식이 부모에게 무심한 건 매일반인 모양이다.
그러나 연암이 매번 자식들에게 일장연설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며느리가 만들어서 보내 준 도포와 버선을 지인들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며느리의 해산을 걱정하기도 한다. 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호방하고 강직한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목민관으로서 백성을 걱정하는 면모와도 만날 수 있다. 임기가 끝나 돌아가야 하는 처지면서도 그곳 백성들의 농사일을 걱정한다든가, 아전들이 서울의 어떤 벼슬아치에게 뇌물성 돈을 주려 하자 그걸 못하게 한다든지 하는 등등에서 그런 점이 잘 확인된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에 서른세 통으로 남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 편지들을 읽다보면 연암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마음에 와 닿는다. 가난을 함께 겪은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지방 관리로 파견된 상황에서 한양의 가족들과 벗에게 보내는 편지야 말로 하나의 통로였고 기쁨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5월이다. 가정의 달이다. 연초록 이파리와 함께 봄이 무르익는 화사한 계절이다. 지금 외로운가? 그렇다면 먼저 마음을 나눠보는 것은 어떨지? 부모님께 혹은 자녀들에게 그리고 가까운 벗들에게 꾸밈없이 솔직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보는 5월을 채워나가면 좋겠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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