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1 월간 제716호>
<별난 한국사 이야기> 손가락 잘라 독립을 호소한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1920년대에 독립 투쟁의 중심지인 만주에는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던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남자현이다. 남자현은 의병 운동을 하던 남편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숨지자, 3·1운동 때 만세를 부르고 만주로 떠났다. 그리고는 서로군정서에 들어가 여성 대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독립군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했는데, 자기 자식을 대하듯 자애로운 손길에 독립군들은 남자현을 어머니처럼 믿고 따랐다.
남자현은 1925년 사이토 조선 총독을 암살하려고 서울로 들어갔다가 실패하여 돌아간 적도 있었다.
1932년 9월, 국제 연맹에서는 만주로 조사단을 보냈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조사하는 이 조사단의 단장은 리튼 경이었다. 하얼빈에 도착한 리튼 경은 흰 천에 싸인 잘린 손가락을 받고 기겁을 했다. 흰 천에는 피로 ‘조선은 독립을 원합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도대체 이것을 누가 보냈느냐?” “남자현이라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보냈습니다.”
이 일은 세계로 널리 알려져 큰 충격을 주었다. 남자현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하려고, 남자도 할 수 없는 대범한 일을 한 것이다.
남자현의 아들 김성삼은 독립군을 길러내는 곳인 신흥무관학교를 다니고, 1923년부터는 만주에서 열심히 장사를 했다. 남자현이 만주를 돌아다니며 마음껏 독립 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이 장사를 하여 가족의 생계를 꾸렸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김성삼이 어머니와 함께 길을 가다가 일제의 밀정(스파이)을 만났다. 남자현은 아들에게 귀엣말을 했다.
“성삼아, 보자기를 갖고 있니?”
“예, 어머니. 갑자기 보자기는 왜 찾으세요?”
“다 쓸 데가 있다.”
남자현은 보자기를 받아 들고 길가에 있는 가지밭에 들어갔다. 그러더니 가지를 하나 뚝 따서 보자기에 싸고는 밀정에게 다가갔다.
“꼼짝 마라! 손들어!”
보자기에 싼 가지를 밀정의 등에 들이대자, 밀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총부리를 들이대고 자기를 위협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남자현은 밀정을 집으로 끌고 갔다. 겁에 질린 밀정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남자현은 1933년 만주국 주재 일본 대사 겸 일본 관동군 사령관 다께후지를 암살하려고 계획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5개월 넘게 고문을 당한 뒤 17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였다가 감옥에서 풀려나 세상을 떠났다.
남자현, 그녀야말로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로 그 이름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일제 강점기에 용감한 아줌마들의 ‘주재소 습격 사건’이 있었다면서요?

1921년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에 허만적이라는 여인이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경찰서 주재소에 붙잡혀 갔다. 남편은 별다른 죄를 짓지 않았지만 일본 순사들에게 심한 고문을 받아 죽고 말았다.
허 여인은 멀쩡하던 남편이 시신이 되어 돌아오자,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윽고 정신이 든 그녀는 주재소를 찾아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들! 내 남편 살려내라, 내 남편 살려내!”
허 여인의 처절한 고함 소리는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 순사들에게 쫓겨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허 여인의 집으로 동네 여인들이 모여들었다.
“왜놈들은 살인마예요.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잡아가 싸늘한 시체로 만들다니.”
“주재소 안에는 죄 없는 사람들이 많이 갇혀 있어요. 그 사람들도 왜놈들에게 고문을 받아 죽기 전에 우리가 나서서 구해 줍시다.”
허 여인을 비롯하여 동네 아줌마들은 몽둥이를 들고 주재소를 습격했다. 그리하여 일본 순사들을 붙잡아 밧줄로 꽁꽁 묶고, 감옥 속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이 사건이 바로 용감한 아줌마들의 ‘주재소 습격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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