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1 월간 제716호>
<4-H인의 필독서> 백석을 만나다

맑고 투명한 백석의 시와 거닐다

백석을 만난다. 외롭고 높고 쓸쓸할 때, 가난이 슬플 때 백석을 만난다. 아니, 백석의 시를 읽는다. 백석은 시를 쓰는 사람들,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신경림 시인은 백석의 시집 ‘사슴’을 읽은 저녁, 신선한 충격으로 밤을 샜다면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최고의 시인으로 백석을 꼽았다. 안도현 시인의 경우, 자신의 시집 제목인 ‘모닥불’과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백석의 시에서 따왔을 정도다.
많은 이들이 우리 문단의 독보적인 시인으로 평가하기 주저하지 않는 백석의 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이숭원의 ‘백석을 만나다’를 골랐다. 이 책에는 첫 발표작인 ‘정주성’에서부터 해방 공간의 마지막 작품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까지 백석의 시를 전부 수록하고 해설을 붙여 실었다.
백석의 시어는 순수한 우리 고유어로 되어 있다. 때문에 각주를 보면서 읽어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맑고 투명하여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준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이십대의 나는 이 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가난한 내가 사랑함으로 푹푹 눈이 내리는 밤. 그 풍경이 그려지고 백석의 절절한 사랑이 그립기도 했다.
내 마음에 각인된 시는 ‘모닥불’이다.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돈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수도 땜장이도 큰 개도 /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라는 구절 때문이다. 버려진 잡동사니가 섞여 모닥불로 타오르고 그 불 주위에 다양한 사람들이 둘러 앉아 몸을 녹인다는 인식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라는 구절에 깊이 매료되었던 시가 바로 ‘흰 바람벽이 있어’다. 이 시는 백석이 만주에 체류하던 1941년에 씌어졌으며 자신의 내면을 거의 숨지기 않고 드러낸 작품 중의 하나다.
백석이 해방 공간에서 발표한 마지막 작품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다. ‘남신의주’와 ‘유동’은 지명이고 ‘박시봉’은 사람의 이름이다. ‘방(方)’은 편지를 보낼 때 세대주 이름 아래 붙여, 그 집에 거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집에서’라는 뜻이다. 이 시는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 그 살뜰하던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서 헤매이었다.”라며 절망적으로 시작되지만 고통 속에서도 시인은 신산한 삶을 극복할 의지를 품으며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떠올리며 시를 마무리 해낸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이었던 백석, 그 아름다운 사람의 흰 바람 벽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의 집에서 보내온 시편,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모닥불이 있어 2월의 시린 바람도 견딜 만 한 것이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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