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눈물 흘리며 최선 다해 ‘운명’을 바꿔라
또 한 해를 보낸다. 끝자락만 남긴 2009년을 잡고 나는 나에게 묻는다. ‘잘 살았니?’라고. ‘잘 살았던가?’ 되돌아보니 늘 바빴다. 바쁘면 쉽게 지친다. 지쳐서 의욕까지 잃게 되면 펼쳐 드는 책. 원로 소설가 한승원의 ‘이 세상을 다녀가는 것 가운데 바람 아닌 것이 있으랴’다. 천천히, 책을 읽으며 노소설가의 열정을 나에게 옮겨 에너지를 충전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이 책은 나의 여느 시집이나 소설집들과 달리 모든 표현의 기교나 장치들을 다 벗어던져 버린 알몸 그 자체로 영혼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또 40년 동안 쓴 수필을 모으고 새로 쓴 것을 엮어내서인지 진솔하지만 열정이 느껴지는 글들로 가득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짝이 손금을 봐주면서 한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출세금이 집게손가락쪽으로 뻗어 올라갔으면 장차 굉장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었을 터인데”라며 농담을 섞어 한 친구의 말이 그에게는 큰 상처가 됐다. 손금 때문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없다는 운명을 거역하고 싶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3년 동안 농사를 짓고, 김 양식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문학공부를 했다고 한다. ‘소설가가 되기만 한다면’이라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피눈물 흘리며 열심히 책 읽고 글쓰기를 해 운명을 바꿨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올해 어떤 시험에서 불합격했거나, 사랑을 얻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거나,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너무 쉽게 좌절하거나 절망 속으로 빠져들지만 말고 밤에 몰래 자기 손바닥의 출세선이나 재산선을 자기가 뜻한 바대로 눈물 흘려가면서 교정해볼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손금 교정은 실제로 손금을 바꿨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피눈물을 흘리며 열심을 다해 운명을 바꾸었다는 얘기다. 그런 까닭에 그는 사람들에게 운명을 믿으라고 강권하고 있다. 운명을 믿고 자신의 뜻하는 대로 운명을 바꿔나가라는 얘기다. 운명의 바퀴는 밀고 가는 자의 의지에 따라 이쪽으로 굴러갈 수도 있고 저쪽으로 굴러갈 수도 있기에.
지친 나에게 짜릿한 충전의 에너지로 다가온 구절은 ‘절망 뒤에 오는 더 치열한 기운, 봄’을 읽다가 만났다. “옛 세포들이 죽지 않으면 새 세포가 생길 수 없고 생명체는 싱싱해질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늘 죽는다. 나도 순간순간마다 죽는다. 절망할 때마다 죽는다. 한 번씩 죽고 났을 때 나는 더 강해진다. 오리털 파카를 뒤집어쓰고 현관문을 열친다. 새 삶을 찾아나서 듯이 기운차게 나선다. (중략) 겨드랑이와 살갗이 근질거린다. 싹이 나려는 것이다. 봄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내 속에서 새 우주가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품은 생각 하나. 새 우주로 태어나게 될 2010년 새해, 4-H회원 여러분 모두의 가슴 속에 싱싱한 생명체가 넘쳐 새 삶이 충만하기를, 성심으로 기원한다.
〈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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