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국토와 시간의 국토 - 국토사랑 어떻게 해야 하나 ②
박태순 / 소설가
2008년 8월 15일부터 ‘나의 사랑 나의 국토’를 연재하기 시작하여 벌써 1년을 넘기어 2년째의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4-H신문의 소중한 매체공간을 너무 오래도록 차지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제 여장을 풀어서 국토여행 연재의 글을 마감할 때가 되었다고 일깨운다. 이에 근원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데, 우리는 왜 국토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아야할 성 싶다.
‘비코즈 데어(Because there)’라는 말이 명언이라고 한다.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영국의 어떤 산악인이 퉁명스레 내뱉은 대답이었다. 내가 있는 여기(here)로 산을 불러올 수는 없는 노릇이고 따라서 산이 있는 거기(there)로 내가 찾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처럼 지당한 말씀이 어찌해서 ‘명언’이 되었을까.
여행은 A라는 출발지와 B라는 도착지 사이의 공간이동이라 할 수 있다. 곧 여기(here)에서 거기(there)로 찾아갔다가 되돌아오는 행위이겠는데 우리 민요에는 ‘여행노래’라 부를 수 있는 곡조들이 많다.
“나비야 청산가자 호랑나비야 너도 가자….”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 구경을 가소….”
이런 민요를 ‘만고강산 유람’ 유형이라 부를 수 있다. 요즈음 표현으로 하자면 ‘생활 재충전’의 나들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스타일이고, 닫힌 자아를 열어 탈출을 하고 갑갑한 일상을 전복시키는 마음의 행로이다.
그런가 하면 ‘청산에 살으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 하는 청산별곡이라든지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나 잘한다, 품바 하고 잘한다’ 하는 각설이타령도 있다. 이런 별곡과 타령은 떠돌뱅이가 되어 뜨내기로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풍류 노마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역사는 농경 정착문화를 지속시켜왔을 망정 고대 천손족의 유목적인 유랑 정서가 내부 속에 살아 흐르고 있다고 살핀다.
‘전국1일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오늘의 국토환경은 여행문화의 형태와 방식을 크게 변화시킨다. 더구나 1989년부터 외국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인바운드’보다는 ‘아웃바운드’가 더욱 성행한다. 관광지리학은 내국인의 외국 나들이를 ‘아웃바운드’라 하고 외국인의 한국 나들이를 ‘인바운드’라 칭하는데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국내여행보다 국외여행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국내를 벗어나는 맛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라 하고, ‘외국은 국내와 다를 것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대다수를 이룬다고 한다.
현미경의 국토와 망원경의 국토…. 전자를 도보여행의 국토라 한다면 후자는 고속국도-철도, 또는 비행기 여행의 국토이다. 국토여행은 공간의 이동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이동이 된다.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이라 하는데 21세기적인 첨단문명, 20세기적인 산업문명, 그리고 ‘앤티크’의 생활문화와 민속이 오늘의 국토 속에 공존하고 공생한다.
외국여행이 외국에 나가서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겉보기’의 여행일 수밖에 없고 ‘속보기’의 국토기행은 이 땅에서 내가 살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공간탐구이고 시간탐구이다. 국토의 공간여행보다도 국토 속의 시간여행을 더욱 깊숙이 진행시켜 보기를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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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낙안읍성의 민촌(民村). 순천 낙안면 동내리-서내리-남내리의 22만1100㎡에 달하는 낙안읍성에서는 국토의 공간여행과 시간여행을 함께 누려볼 수 있다. 수군들의 방어성(산성)이자 현감이 다스리는 읍성인데 특히 성민들의 민촌부락이 이채롭다. 중국의 낙양성이나 서양의 하이델베르크 고성만 찬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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