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5 격주간 제712호>
<시 론> ‘심장’을 위한 ‘건배’사(辭)

박경용 (시인, 아동문학가)

올해에 나는 고희를 맞았다.
어지간히 망가진 나를 놓고 주변 사람들은 “요즘의 칠순은 옛날의 환갑에 지나지 않는다”며 하나같이 위로·격려하기를 잊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 한들 결코 적지 않은 나이, 요즘 들어 번번이 세월의 한계를 절감하곤 한다.
‘역불여기 기불여정’(力不如氣 氣不如靜)이라고 했던가. 힘은 기를 못 따르고, 기는 고요함(안정·평안)만 못 한다는 뜻이지만, 날로 기력은 떨어지고 마음의 평정마저 얻지 못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남은 건 불안과 초조감뿐이다.
이렇듯한 정신적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내 자신의 정서에 관한 문제다. 한말로 영육에 걸쳐 전반적으로 무디어진 현상인데, 정서적 반응, 곧 감정이 무디어진다는 것은 명색이 시인인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무디어진 감정’이라고 잘라 말했지만, 곰곰이 새겨보면 이 ‘감정’이라는 말에는 감각·감성(감수성)·정서 등 이른바 우리의 ‘마음’(심정)에 해당하는 요소가 두루 배어 있다. 한데, 이 ‘마음’이라는 것을 다른 비유적·상징적 개념으로 바꾸면 무엇이 되는가. ‘가슴’과 ‘심장’이 된다. 물론 이 두 개념 사이에도 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있다. 가령, ‘심장이 뛰는 소리가 아닌,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라고 할 경우, ‘가슴 뛰는 소리’가 ‘감동’ 쪽에 더 가까운 것이다.
오늘의 나에게 닥친 가장 심각한 증세가 정서적 반응의 바로미터라 할 이 감동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횟수도 현저히 줄었지만 강도 또한 형편없이 낮아진 꼴이다. 그리도 잦고 그리도 강하던 떨림·설렘·들렘…… 그 예민하던 가슴의 금선(琴線)이 이젠 녹슬다 못해 영 끊어져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아무튼 요즘 나는 내 측근 문우들에게 그러한 심각성을 입버릇처럼 들먹이며 “심장이 점점 얇아져 가고 있어 큰일이야!”라고 탄식하곤 한다.
이쯤에서 잠깐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면, ‘얇아진 심장’은 늙은 나만의 장애는 아닌 것 같다. 우선 오늘날의 경박한 세태가 그러하고, 영악해진 인간군상 모두가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그 장애를 앓고 있지 않나 싶다.
울컥하기를 잘하는 얄팍한 감격, 재빠른 두뇌 회전에 따른 섣부른 감탄은 흔하지만, 진정성에서 우러나는 진한 감동은 만나보기 어렵다. ‘냄비 체질’이라느니 ‘막장 드라마’라느니 하는 달갑지 않은 시쳇말이 유행하게 된 오늘날의 우리 주변 사정이 이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감동이란 근본적으로 그 차원이 다르다. 저 깊숙한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의 마그마요, 분출한 뒤에도 갖가지 뚜렷한 무늬를 남기는 감성(정서·서정)의 메아리다. 오늘날, 감동에 젖고, 취하고, 공유하기가 그리 쉽지 않게 된 것이 오로지 내 얇아진 심장 탓만일까?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전환한 오늘, 얼핏 보기에 우리는 머리도 한결 좋아지고, 손도 놀랄 만큼 발전하고, 건강도 월등히 향상되었다. 하지만, 가슴만은 그와 반비례하여 오히려 퇴화하지는 않았는지, 따라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심장-가슴-마음’을 두텁게 하는 일이 아닐지를 더불어 고민할 시점에 다다라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땅의 ‘4-H’를 처음 만난 것이 청소년 때였으니, 어느새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그만한 연륜의 이끼가 쌓였으니 ’4-H’, 그만은 십분 헤아려 주리라. 심장이 얇아질 대로 얇아져 정서적 장애를 앓고 있는 이 늙은 시인의 심정을, 그리고 우리 이웃들의 심장을 두텁게 하는 일이 다른 3-H보다 중요한 일차적 사명이라는 것도. 뜨겁고도 실팍한 심장을 통한 우리의 정신적 건강을 오래 오래 누리기 위해 ‘4-H’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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