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1대 왕 중종 때 영의정에 올랐던 장순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글도 잘하고 재능이 많았지만 얼굴이 아주 못생겼다. 꼭 돼지 머리를 닮아 어렸을 때 별명이 ‘돼지 대가리’였다.
동네 아이들은 “야, 저기 돼지 대가리 온다! 쟤를 앉혀 놓고 고사나 지내볼까?” 하고 놀려대기 일쑤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의 별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이 장씨라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를 ‘장 돼지 대가리’라고 불렀다.
장순손은 속상했다. 자기가 좋아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겠는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못생긴 얼굴 때문에 형장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당시는 연산군이 나라를 다스릴 때였다. 하지만 연산군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기생들과 어울려 날마다 잔치를 벌였다.
어느 날, 종묘에서 제사를 마치고 제사상에 올랐던 돼지 머리가 쟁반에 담겨 연산군의 잔칫상 위에 올라왔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한 기생이 돼지 머리를 보자 키득키득 웃는 것이었다. 이 기생은 성주에서 올라왔는데,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연산군이 기생에게 왜 웃느냐고 묻자 기생이 대답했다.
“전하, 성주에는 저 돼지 머리를 쏙 빼닮은 장순손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돼지 머리를 보니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웃었습니다.” “뭐, 뭐라고? 내 앞에서 다른 남자를 생각하다니! 장순손이 네 애인이 분명하구나. 여봐라, 장순손을 잡아오너라. 그놈을 사형시켜야겠다.”
이리하여 장순손은 영문도 모르고 붙잡혀 금부도사에게 이끌려 서울로 죽으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함창 공험지까지 왔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가는 것이었다. 이들이 가야 할 길은 오른쪽 길이었는데, 장순손은 문득 왼쪽 길로 가면 목숨을 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금부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고양이가 가는 길이 서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저는 과거를 보려고 서울을 오르내릴 때 고양이를 보면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고양이를 따라 저 길을 이용해 서울로 가고 싶습니다.”
금부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죽을 죄인인데 그 정도 청이야 들어 줄 수도 있다고 여긴 것이다. 게다가 서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하니 하루빨리 죄인 호송을 마치고 싶었다. 그런데 장순손이 택한 왼쪽 지름길이 그에게는 구사일생의 길이 되어 주었다. 성미 급한 연산군은 장순손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다.
“장순손을 서울까지 데려올 필요 없다. 선전관을 내려 보내 중간에 목만 베어 오너라.”
그리하여 선전관은 말을 달려 큰길로 내려오고, 금부도사 일행은 지름길로 올라가 서로 길이 어긋나 버렸다.
그런데 일행은 상주쯤 왔을 때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쫓아내고 새 임금을 세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순손은 서울에 갈 필요가 없어졌고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 얼굴이 못생긴 죄로 수모를 겪은 사람은 또 누가 있었나요?
고려 때 뛰어난 문인인 이규보는 온몸에 악창이 난 채로 태어나서 얼굴은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오죽하면 길에 버리려고 했겠는가.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이규보를 보고 ‘보배 같은 아이’라고 하여 도로 데려다 길렀단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광문전’은 실제 인물이었던 거지 광문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광문은 얼굴이 볼썽사납게 생겼고, 입까지 커서 주먹 둘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나이 사십이 넘도록 머리를 땋은 총각이었는데, 사람들이 장가를 들라고 권하면 이렇게 대답했다.
“잘생긴 사람을 구하는 것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나같이 못생긴 남자가 어떻게 장가를 들겠어요?”
광문은 얼굴이 못생겼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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