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 무섭고, 발랄한 B급 공포영화
‘이블데드’, ‘다크맨’, ‘스파이더맨’ 중 재미를 느낀 영화가 있었다면 꼭 봐야할 영화가 있다. 바로 샘레이미 감독의 ‘드레그 미 투 헬’이다. ‘스파이더맨’으로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감독이 되어버린 샘 레이미 감독이 ‘이블데드’를 만들었던 초심으로 돌아가 B급 정서가 듬뿍 밴 공포영화를 만들었다.
‘드레그 미 투 헬’은 ‘이블데드’처럼 심령 공포 영화로 시작한다. 1969년 멕시코의 한 소년이 악마 라미다에 의해 지옥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현대로 돌아오면 전혀 공포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크리스틴’(앨리슨 로먼)이 등장한다. 은행에서 대출 상담 업무를 담당하는 크리스틴은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속물근성도 있는 평범한 20대이다.
심리학 교수인 애인에 비해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는 크리스틴은 공석인 팀장 자리에 집착하게 된다. 그녀가 강력한 승진 후보이지만 갓 입사한 중국계 남자가 경쟁자로 급부상한다. 그런데 하필 대출 빚을 갚지 못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집시 노파(로나 레이버)가 찾아온다. 평소의 크리스틴이라면 대출 연장을 해줬겠지만, 승진을 위해 노파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무릎까지 꿇고 통사정하던 노파는 그녀에게 저주를 내리고, 40년간 숨죽이던 라미아가 크리스틴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드레그 미 투 헬’이 요즘 판치고 있는 조악한 공포 영화와 차별성을 갖는 것은 바로 크리스틴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크리스틴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죄책감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누구도 떳떳할 수 없는 현실처럼 주인공 역시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죄의식을 숨기기 위해서 지옥에서 온 악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듯 보인다. 크리스틴은 악마를 물리치고 모든 일이 자기 잘못이었다고 남자친구에게 고백을 한다. 결국 크리스틴을 짓눌렀던 것은 악마가 아니라 대출을 해주지 않아서 사고로 이어진 노파에 대한 죄의식이었다.
영화는 이런 캐릭터를 기반으로 B급 정서를 맘껏 펼친다. 물어뜯고 있는 노파의 틀니가 빠진다거나, 입에서 쏟아진 피가 상사의 얼굴에 묻는 등 다양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악마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크리스틴의 매력은 이 영화를 명랑한 공포영화로 인도한다. 〈손광수 /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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