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5 격주간 제712호>
<4-H인의 필독서> 아르헨티나 할머니

깊은 슬픔 속에서 발견한 따스한 어떤 것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오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재밌는 일’을 궁리하며 눈을 반짝여본다. 초겨울 찬바람 같은 신선함에 낯선 독특함이 버무려진 ‘재미’라면 어떨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함께라면 길고 지루한 11월의 밤도 행복할 수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 특이하다 못해 엉뚱한 이름이다. 성별 불명, 국적 불명의 ‘바나나’라는 필명을 생각해 낸 이유는 국제적인 감각을 지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상실로 인한 상처와 슬픔을 극복할 사랑과 위로를 주는 작품을 써왔고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구원이 되어 준다면, 그것이 좋은 문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열여덟 살인 주인공 나, 마쓰코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엄마가 죽었을 때, 내게서 평범한 세계는 사라졌다. 그 대신 지금까지 커튼 너머에 있던 어떤 굉장한 것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이란 정말 죽는 거네, 아주 평범했던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달라질 수도 있는 거네. 그 지지부진하고 따분했던 감정들이 모두 착각이었어. 깊은 슬픔 속에서도 매일, 신선한 발견이 있었다.”
엄마의 입원 후 아침저녁으로 병원에 드나들던 아빠는 엄마가 죽던 날 아침 늦잠을 잤고, 나는 엄마의 임종을 혼자서 지켰다. 엄마의 죽음을 눈치 챈 아빠가 겁이 나서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 나는 아빠에게 조금은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
얼마 후 친구로부터 아빠가 동네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는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집에 드나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빠가 이상해진 건 엄마의 죽음으로 울적해서라고 생각하며 내버려 두기로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아빠는 오랫동안 해온 석재상의 문을 닫고 사라져 버린다.
아빠를 찾아야하는 나는 용기를 내서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살고 있는 아르헨티나 빌딩으로 간다. 폐허처럼 끔찍한 아르헨티나 빌딩의 현관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한 눈에 나를 알아보고 꼭 안아준다. 그 순간 이유 모를 눈물이 흐른다. 다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아르헨티나 할머니 역시 눈물을 흘린다.
아빠는 아르헨티나 빌딩 옥상에서 만다라와 엄마를 위한 돌고래 비석을 만들고 있었다. 그 작업은 아빠에게 위로를 주었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나 역시 아빠를 핑계로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지저분하고 악취도 심했지만 아르헨티나 빌딩은 어쩐지 포근하고 편안했다. 나는 아르헨티나 빌딩을 통해 고아처럼 흩어져 있던 아빠와 내가 다시 한 가족을 이루었고 구원을 받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문장은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살아 있다. 절대 마음속에서 미리 묻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내 마음에 묻었을까? 나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묻혀 있을까? 생각하느라 한참 동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정진아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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