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01 격주간 제711호>
<회원의 소리> 4-H에서 20대의 꽃을 피우다

이창래 부회장〈전남 장흥군4-H연합회〉

내가 4-H를 접하게 된 것은 1999년 고등학교 졸업 전에 전직 도연합회장님의 추천에 의해 4-H행사에 참가하면서부터다. 아무것도 모르고 갔던 행사에 참가하자마자 4-H연합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2002년도부터 군연합회 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도 임원으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군4-H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 20대의 대부분을 4-H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너무나 많은 기억, 추억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야영교육이 아닌가 싶다. 야영교육의 꽃은 아무래도 봉화식이라 생각된다. 도 임원시절에 야영교육과 봉화식을 준비하는데 10여명의 도 임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봉화식 일주일 전부터 합숙해 가면서 아주 힘들게 야영교육을 준비했다.
피곤함 속에 야영교육이 개최되었고, 드디어 봉화식이 시작되면서 도 임원들은 더욱 긴장하여 행사를 진행시키는데, 하이라이트인 화이어 레터와 봉화에 불이 붙는 순간, 그동안에 피로가 사라지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도 임원들끼리 서로 고생했다고 끌어안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회원 간에 단합의 장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행사 및 교육을 통해 끈기와 인내를 배웠고, 더불어 공동체라는 소중한 이념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물론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나의 짧은 사회활동 기간 동안 모든 활동의 밑받침이 되었던 것은 4-H가 아닌가 싶다. 어느 단체를 가던 간에 자신감이 생기고, 회의진행이나 행사진행 요령도 알게 되어서 4-H가 아닌 다른 단체에서도 나 자신을 남보다 돋보이게 하는 능력을 4-H를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게 됐다.
어린 나이에 아무도 모르는 시골에서 일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4-H활동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었기에 인맥 또한 넓어져 시골에서 생활하는데 어려움도 사라졌다.
활동을 하면서 조금 서운했던 것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께서 아직도 4-H가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지금은 비록 회원 수도 적어지고 사업도 차츰 줄고는 있지만 농업이 있는 한 4-H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4-H본부 이하 군연합회도 많은 홍보와 활동은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열정과 끈기를 갖고 4-H를 알리는데 더욱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노인이 되더라도 20대 시절 활동했던 4-H는 항상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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