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25대 진지왕은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상대가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따지지 않고 권력을 휘둘러 많은 여자들을 첩으로 거느렸다.
어느 날, 진지왕은 서라벌에 살고 있다는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복사꽃처럼 환하고 예뻐서 ‘도화녀’라고 불리는 여자였다. 진지왕은 시종들을 보내 도화녀를 대궐로 데려왔다. 도화녀에게 반한 그는 도화녀를 첩으로 삼으려 했다. 도화녀는 이미 결혼한 여자였다. 따라서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다며 진지왕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럼 남편이 없으면 내 뜻을 따르겠느냐?” “따르겠습니다.”
진지왕은 도화녀를 순순히 집으로 돌려보낸 뒤, 그녀를 차지할 궁리를 했다.
‘도화녀를 차지하려면 남편을 없애야겠구나. 어떻게 해치울까? 자객을 보내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까? 아니면 돌아오지 못하게 멀리 귀양을 보낼까?’
하지만 진지왕은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 뒤 반란이 일어나 반대파에게 목숨을 빼앗긴 것이다. 그들은 진지왕의 사촌인 백정을 왕으로 모셨는데 그가 제26대 진평왕이다.
그 뒤 2년이 흘렀다. 도화녀가 사랑하던 남편은 몹쓸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장례를 치른 지 열흘째 되는 날 밤, 진지왕이 도화녀의 집에 나타났다. 그는 죽어서 귀신이 되었지만, 살아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진지왕은 도화녀의 집에서 일주일을 묵었다. 그리고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도화녀는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비형이다.
진평왕은 도화녀가 진지왕의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도화녀와 아기를 대궐로 불렀다.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살게 해 주었다. 비형은 건강하게 잘 자랐다. 15살이 되었을 때는 왕으로부터 집사라는 벼슬을 얻었다.
비형에게는 남다른 버릇이 있었다. 밤에 몰래 대궐을 나갔다가 새벽에야 돌아오는 것이다. 도화녀는 이를 눈치 채고 어느 날 밤 비형의 뒤를 밟았다. 비형은 황천 언덕으로 가더니 공동묘지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귀신들이 몰려왔다. 비형은 귀신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도화녀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져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진평왕은 비형을 불러서 물었다.
“네가 귀신들과 친하다고 들었다. 귀신들을 시켜 하룻밤 새에 다리를 놓을 수 있겠느냐?”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신원사 북쪽을 흐르는 강에 돌다리를 놓아 달라고 해라. 너도 알다시피 그 곳에 있는 나무다리는 비만 많이 오면 떠내려가지 않느냐?”
그 날 밤, 비형은 귀신들을 시켜 돌다리를 놓았다. 사람들은 하룻밤 새에 강에 다리가 놓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때부터 이 다리는 귀신들이 놓았다고 하여 ‘귀교(鬼橋)’라고 불리었다.
날고 뛰는 귀신들도 비형의 말은 고분고분 잘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신을 쫓을 일이 있으면, 비형의 얼굴을 종이에 그려 붙여 놓았다고 한다.〈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 옛날 사람들은 정말 귀신이 있다고 믿었나요?
옛날에는 ‘귀신날’이 있었다. 음력 정월 열엿새 날에는 먼 곳에 가면 귀신이 따라온다고 해서 여행을 삼가고 집에서 쉬었다. 또 이날은 닭 귀신이 활동하는 날이므로 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이 날 귀신이 집에 들어오면 일 년 동안 나가지 않고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대문간에 고추나 목화씨, 혹은 일 년 동안 모은 머리카락을 태웠다. 머리카락이 타는 고약한 냄새를 풍겨 귀신을 쫓은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귀신이 있다고 믿었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는데, 억울하게 죽어 원한이 남아 있을 때는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인간 세상을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귀신 중에는 착한 귀신도 있지만 나쁜 귀신이 더 많다고 보았다. 또한 귀신은 허물어진 옛집, 오래된 나무, 캄캄한 동굴, 옛 무덤 등에 살며, 사람이 무서운 느낌이 드는 곳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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