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01 격주간 제711호>
<제9회 전국4-H회원 사이버백일장 본선 진출 작품> 농촌, 자연 그리고 벗

조미연 회원 〈충남 부여 장암중학교4-H회〉

해마다 무슨 심술인지 짓궂게 내리쬐는 태양빛이 절정에 달하면 이 곳, 농촌의 손놀림은 더욱 분주해진다. 모두들 농촌을 떠올리면 이른 아침에는 고운 음색의 새 소리가 들려오고, 늦은 저녁에는 개구리 울음 소리가 잔잔히 들려오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꿈꾸던 세상이라 생각하겠지만, 늘 자연과 함께 숨 쉬는 내게 농촌은 꿈이라기보다는 내 삶의 일부분과 다름없다.
사실 농촌이 내 삶의 일부분이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다른 도시 아이들과 다름없이 학원에 쫓겨 자연과 친해질 기회가 없던 평범한 도시 아이였다. 내가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곳은 오직 방학 때만 가는 작은 시골 마을의 할아버지 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할아버지 댁이 나의 집이 되어버렸으니, 난 이제 늘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시골로 이사 오기 전까지 고구마도 수박처럼 땅 위에서 열리는 줄 알았던 나로서는 땅 속 깊은 곳에서 흙과 숨 쉬며 자라나는 고구마가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게 당연하다. 더군다나 우리 엄마, 아빠가 춥고 더운 날씨를 이겨내며 온 정성을 다해서 키우신 농작물들이기 때문에 나 또한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이사 와서 처음으로 고구마를 캐게 된 날이 생각난다.
“내가 누나보다 더 많이 캘 거야!” “난 전에 고구마 캐러 농촌 체험학습도 갔다 왔었거든! 내가 이길 거야.”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던 동생과 나는 ‘고구마 캐기 시합’을 하게 되었다.
“찾았다! 우와, 진짜 많네!” 한 번도 캐본 적이 없는 동생이 고구마를 어찌나 잘 캐던지…. “엄마, 고구마가 나 싫어하나? 왜 하나도 안 나오지?” “거기는 엄마가 한데잖아. 그러니까 고구마가 안 나오지!”
어쩐지 다른 사람들은 땅을 팔 때 약간 딱딱해서 힘들어 했는데, 나는 아무 탈없이 부드럽게 파지더라.
벌써 커다란 봉지에 고구마를 반이나 채운 동생의 잘난 척에 못 이겨 얼른 다른 곳에서 열심히 땅을 파고 있을 때, 작은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땅 속으로 들어갔다. 지렁이가 들어간 곳을 팠더니 자주 빛깔의 고구마가 수줍은 듯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른 그 고구마를 커다란 봉지에 담았다.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엄마가 수박과 약간의 다과를 가져오셨다.
‘일한 뒤에 먹는 음식은 꿀맛’이라고 어느 사람이 말했더라? 아무튼 이 말은 사실이었다. 평소 수박을 잘 먹지 않는 나도 그 때만큼은 수박을 많이 먹게 되었다.
“오늘 재밌었어?” “음. 조금 힘든 것만 빼면 정말 재밌었어요!”
재미있었냐는 아빠의 말씀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해가 저물어 산 뒤로 숨을 때까지 우리 가족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도시에서는 꿈꾸지도 못했을 장면이다. 집에 돌아오면 서로 피곤에 지쳐서 말 한마디 나누지 못 하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처음 시골에 왔을 때는 친구들도 별로 없고, 게다가 준비물을 사려면 15~20분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해서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 나는 이 곳, 시골이 너무 좋다. 처음에는 물과 비료만 주면 야채가 잘 자랄 것이라 믿었던 내가 그들이 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을 보면, 분명 도시에 살 때와는 다른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해가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말했듯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농촌 생활은 다른 도시 아이들에게는 꿈의 세상이지만 이미 내게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오늘도 밭에는 높고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물든 산을 벗 삼아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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