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진 (아동문학가, 4-H와푸른세상 편집자문위원)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4-H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고향마을 입구에 서 있던 4-H표지석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직도 4-H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4-H가 사람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로만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난 한가위에 필자도 귀성객들의 틈에 끼어 교통정체를 일으키는데 한몫 거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왜 이 고생을 하면서 고향을 찾을까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그동안 각박하게 살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고향에서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을 내렸다. 고향 마을에 들어서면서 어렸을 때 기억을 되살려 4-H표지석을 찾아봤으나 흔적도 없었다.
필자는 중학교까지만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부터 도시에 나와 있었기에 4-H를 직접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국4-H본부에서 발간하는 정기간행물에 관여하고 회원들의 활동 소식을 접하면서 4-H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땀흘리며 열심히 산을 오르다가 만난 약수터처럼, 고향마을 입구의 사라진 4-H표지석을 찾은 것처럼 다시 4-H와 함께할 수 있어서 반갑고 기뻤다. 지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4-H의 이념과 활동의 필요성을 역설할 만큼 4-H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4-H활동은 과거보다 더 필요한 운동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청소년문제를 얘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비행청소년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나 정작 내가 우려하는 것은 오히려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우등생들이다. 저들이 장차 우리 사회와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 그룹이 될 것인데, 지도자란 무릇 지식만 많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렇게 죽어라 경쟁만 하면서 자라난 리더가 어떻게 자기에게 뒤진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것인가. 무조건 이기기 위해서 뛰는 동안 상처받고 각박해진 마음으로 어찌 우리 사회와 나라를 이끌어갈 것인가.
필자는 언젠가 다른 지면에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이상 식물이나 동물을 기르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동식물을 기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자신의 마음속에 기를 수 있어서다. 하다못해 집 앞 가로수나 뒷산 나무 한그루에 자신의 이름표를 붙여놓고 돌보자고 했다.
그런데 지금 4-H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내가 제안한 것보다 훨씬 청소년들에게 자연과 환경 그리고 생명을 사랑하는 심성을 길러주고 있었다. 어찌 4-H전도사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4-H의 지·덕·노·체 이념과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천으로 배우자’는 모토는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정신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한국4-H활동 지원법’이 제정돼 이 운동이 변화된 시대에 적합한 생명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이제 지금 4-H활동을 하는 4-H인들이 나서서 4-H를 아련한 추억 속의 표지석으로만 생각하는 4-H출신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래서 4-H가 과거 우리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 청소년들의 마음에 새 희망의 바람을 불어넣어 줘야 될 것이다.
지금 마을 입구의 4-H표지석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표지석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4-H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지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영원한 지·덕·노·체 4-H돌비를 우리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다시 아로새기는 일에 모두 함께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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