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5 격주간 제710호>
나의 사랑 나의 국토 (29)

한라산의 눈높이는 얼마나 높을까 - 김억 국토목판화 읽기 ③
박태순 / 소설가

<김억 국토목판화 ‘한라산 영실계곡’. 한라산 입산 들머리의 병풍바위와 영실기암(오백나한)은 사람들을 판타지의 신화 세계 속으로 빠져들도록 해주고 싶어하는 듯하다.>
제주도는 2006년 7월에 ‘특별자치도’라는 새로운 행정 명칭을 갖게 됐다. 얼핏 들으면 제주도가 ‘독립선언’을 표방하는 것 같기도 한데, 실제로도 국방과 외교, 사법을 제외한 광범위한 분야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다. 동북아의 관광 중심권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문호개방이 요청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니 아무튼 제주도는 각별하다. 바깥 내왕마저 힘들었던 섬 지방이 이제는 국내외의 누구나 쾌적하게 찾고 싶은 드림랜드 섬나라의 이미지를 획득해내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 서비스의 레저 관광 차원만 아니라 특유의 풍토와 민속을 한껏 누리게 하는 제주문화역사 인문환경의 특성 또한 발휘해야 할 일이다.
제주도는 수평선과 지평선 그리고 ‘오름’이라고 부르는 야산의 부드러운 곡선을 함께 보여주면서 한라산을 아스라하게 우러러 보도록 한다. 바다의 수평공간과 한라산의 수직공간을 기묘하게 포개놓는데, 특히 제주 사람들이 ‘중산간(中山間) 마을’이라 부르는 한라산 중턱의 산허리 지역은 정녕코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풍광들을 갈무리하고 있다.
대단히 광활한 초원과 목야(牧野)의 지대가 나타나는가 하면, 바람막이를 하기 위해 길과 집만 아니라 밭이나 공터에마저도 돌담들을 우글쭈글 둘러놓고 있는 이색 풍경들이 다문다문 이어진다.
제주도 방문객들은 최근 올레길 걷기 나들이에 함빡 빠져들고 있다고 하는데 바닷길의 뒤안길들만 아니라 중산간 마을들의 나들이길과 고샅길, 서덜길, 자드락길을 이냥저냥 하염없이 걸어보았던 추억이 나에게도 있다.
황토라기보다는 흑토인 제주도의 돌담길은 우줄우줄 춤을 추듯 한라산으로 기어오르고, 열대 식물들은 이곳이 남국의 태양의 나라임을 증거한다. 한라산은 너무 아득하여 여전히 안개구름 속에 가려 있으나 풍만한 곡선의 ‘오름’ 봉우리들이 황홀하게 여기저기 둥실둥실 솟아 있다. ‘오름’들은 제주도가 섬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져 나가는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 지대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한반도에는 없는 ‘허허벌판’이 이렇게 제주도 속에 있다. 한라산은 높은 산이 아니라 넓은 산이다. 한라산은 저 혼자 우뚝 솟구쳐 오르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고, 그 대신 옆으로 무한정의 벌판을 펼쳐 나아가게 하면서 그러한 공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마지못해 1950m의 높이를 허락하고 있는 듯 보이는 그러한 산이다.
한라산 등산로는 해안의 논틀밭틀 올레길이라든가 중산간 지대의 돌담길, 황톳길과는 분위기가 완연히 다른 포장도로의 자동차길을 통해 일단 높은 고도로 올라가야만 진입할 수 있다.
김억 화백의 목판화 ‘한라산 영실계곡’은 포장도로를 벗어나 눈높이를 한껏 높여주면서 제주도의 고산지역이 어떠한 별천지를 전개시켜 가는지 이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뜯어보고 훑어보았던 까다로운 화가의 깐깐한 관찰내용을 보여준다. 더구나 목각의 입체적인 판화로서 대단한 블록버스터 화면을 핍진(逼眞)하게 꾹꾹 눌러 담아내고 있다.
제주도에 너무도 매료된 화가들이 몇 차례 스케치 여행을 거쳐 특별전시회를 갖는 기획을 마련했는데, 김화백이 이에 참여하여 출품한 작품이다. 디지털카메라를 통해 온갖 풍경사냥을 해볼 수 있는 테크노의 시대이기는 하지만, 김 화백의 영실계곡은 ‘카메라 만년필’로서는 도저히 채록해볼 도리가 없는 한라산을 그의 육안과 육필의 붓끝과 칼끝으로 보여준다. 제주도의 한라산이 왜 영산(靈山)이며 영봉(靈峰)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화가의 몫으로 남겨두어야만 하는 듯싶다.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농촌·사회단신> 강강술래·남사당놀이 '세계무형유산' 됐다
다음기사   일선4-H 활성화 위한 지역4-H본부 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