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1 격주간 제709호>
<시 론> 디지털 시대에 맞는 4-H운동 기대하며

박방희 (시인, 아동문학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일 것이다. 마을 청년들이 4-H구락부를 만든다며 정미소 사랑방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나는 4-H라는 생소한 말에 호기심을 가지며 저녁을 먹고 그곳으로 갔다. 방에는 벌써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내 또래도 있고 고등학교 다니는 형들도 있고 청년들도 있었다.
그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4-H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벽에 걸린 태극기와 4-H기를 보았다. 하얀 바탕의 천에 녹색의 네잎 클로버가 그려져 있고 그 안에 지·덕·노·체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4-H란 클럽의 상징으로 명석한 머리(智育), 충성스러운 마음(德育), 부지런한 손(勞育), 건강한 몸(體育)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실천을 통하여 배운다’는 취지 아래 설립된 청소년 단체의 하나로 세계 각국에 퍼져 있으며, 4-H클럽의 주요활동은 농작물 재배, 가축 기르기, 마을 꾸미기와 인격도야 등 농촌 청소년의 삶 전반에 걸쳐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숭고한 이상과 실천목표를 제시하고 있었다. 농촌 벽지의 중학생이 신문물을 접하는 느낌이랄까,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깥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기대와 두려움이 뒤따랐고, 그날 이후 나는 4-H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4-H이념 교육을 받고 4-H서약을 하고 노래도 부르며 몇 년 동안 열심을 활동했다. 회합 때마다 암송하던 4-H서약의 문구와 내용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걸 소리 높여 외우면 마치 내가 그처럼 훌륭하게 되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
또 4-H회의 금언인 ‘좋은 것을 더욱 좋게(Make the Best Better), 실천으로 배우자(Learn by Doing)’는 것 또한 얼마나 멋있던지!
마을 앞 동구에는 하얀 페인트를 칠한 바윗돌에 네잎 클로버가 푸르게 그려지고 이파리마다 지·덕·노·체 네 글자를 써넣은 4-H표지석이 세워졌다. 돌만 덩그러니 선 게 아니다. ‘장산 4-H구락부’라는 안내판과 함께 주변에는 키 낮은 꽃들을 아기자기하게 심어 예쁜 화단으로 꾸몄다. 그때까지 마을을 꾸미는 일이 없었던 동네에 처음으로 공동체 의식과 함께 환경미화 의식이 심어졌다.
가을에는 군내 4-H클럽 경진대회가 있었다. 나도 우리 집에서 농사지은 굵기는 팔뚝만 하고 크기는 내 키만 한 우엉을 출품하여 특선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시 시골에서는 명절 다음의 큰 축제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는 그 후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다. 아쉽게도 도시에는 그런 운동이 없었다. 자연 나는 4-H와 멀어져 갔다. 뿐만 아니라, 1947년부터 60여 년 동안 지·덕·노·체의 기본이념을 실천하여 농촌청소년 육성을 통한 농촌근대화에 이바지한 한국4-H운동 자체도, 산업화 이후 농촌청소년의 수가 감소하고 국민의 농업에 대한 관심저하로 침체기에 접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
생각하면 오늘날 도시 청소년들에게 4-H운동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회원들과 함께 암송하던 4-H서약은 얼마나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이상을 담고 있는가. 도시의 청소년 조직이나 도시지역 학교의 동아리들이 농심과 자연사랑, 농촌사랑, 인간사랑이라는 4-H 이념을 통해 지·덕·노·체를 실천함으로써,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함은 물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반세기를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농업과 농촌 발전에 이바지한 4-H운동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맞게 변신하여, 국가의 장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지·덕·노·체의 4-H이념을 생활화함으로써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고,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거듭나기를 소망해본다.

목록
 

간단의견
이전기사   <농촌·사회단신> 제1회 ‘방과후 학교 대상’ 시상
다음기사   4-H인에 의한 순수 4-H교육·축제행사로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