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1 격주간 제709호>
나의 사랑 나의 국토 (28)

안동하회마을의 새로움 -김억 국토목판화 읽기 ②
박태순 / 소설가

추석 연휴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매스컴은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표현을 즐겨 써왔다. 귀향의 교통 인파가 온통 국토산하를 출렁거리게 하여 기묘한 역전현상이 빚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이농-탈농-도시집중으로 요약되는 산업사회의 대행진이 급박하게 진행돼 왔던 것이지만, 귀향과 귀성(歸省)의 귀소본능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하기에 음력 정월의 설날과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중추(仲秋)의 한가위 명절 때에는 ‘연휴’의 세시풍속을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마련해주고 있다.
고향으로 되돌아가 일가친척과 친지를 찾아뵙고 성묘를 통해 혼자인 ‘나’가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는 ‘나’를 되살리려는 눈물겨운 피붙이의 본능이고 겨레붙이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두레 삶의 확인이다. 산업시대에서 더 나아간 지식정보시대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 자신의 알리바이 검증이라 할까, 자기 정체성의 바탕을 굳건하게 지켜내고자 하는 그러한 ‘민족의 대이동’이다.
‘고향(故鄕)’은 옛적(故)의 시골(鄕)이다. ‘지나온 시간 속의 공간’이며 ‘쌓여있는 시간을 갈무리해주는 공간’이다. 엄청나게 변하는 세월(시간)과 몰라볼 지경으로 달라지는 환경(공간)임에도 그 모든 것을 붙들어 매어놓도록 하는 것이 바로 ‘고향’이다. 달음박질치는 현재의 변화무쌍에 나는 질질 끌려 다니지만, 불연속성의 현재, 과거와 미래를 총체적인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주게 하는 ‘마음의 행로’가 도착하는 곳이 있어야만 한다.
‘옛 선인들의 삶의 지혜와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마을’ 안동 하회마을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hahoe.or.kr)의 초기화면에는 이러한 로고가 떠 있다.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의 문화인류학 저서가 있었다. 오래된 과거와 오래된 미래는 서로 한 통속의 묶음으로 현재를 확장시켜 주어야 한다. 시간의 확장이면서 공간의 확대이다.
동양화 작가인 김억 화백의 ‘안동 하회마을’이라는 제목의 국토목판화는 이 그림을 대하는 이들을 일단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 마을을 아직껏 가보지 않은 이들은 물론이려니와 여러 차례 찾아보았던 이들마저 생소하게 만든다. 익숙한 하회마을이 아니라 낯선 하회마을, 새로운 하회마을의 이미지이고 영상화면이다.
목판화는 카메라가 담아낼 수도 없고 포착할 수도 없는 화면(畵面)을 생산해내고 있다. 사실적인 카메라워크의 화면이고 묘사인 듯 싶지만 화가는 마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공중으로 올라간 아라비안나이트의 소년처럼 하회마을을 마술적으로 목각했다. 당돌한 부감도이면서 투시도인 것인데, 화가는 하회마을의 공간성을 어떻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일까.
장강대하가 회돌이를 치는 곳이라 해서 하회(河回)마을을 ‘물돌이동(洞)’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화가는 절묘한 자연환경을 인간들이 어떻게 살기 좋은 인문환경으로 디자인해내고 있는지 세세히 살펴서 미주알고주알 화폭 속에 주워 담고 있다. 화가는 동구 밖의 주차장이라거나 자동차 따위들은 아예 무시해놓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진당이라든가 충효당을 비롯하여 가로수에 둘러싸인 마을길을 따라 기와집과 초가집의 취락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실감나게 묘파해내고 있다. 강 건너편의 바위벼랑 속에 정자들이 어찌 배치되고 있는지 알뜰살뜰 그려 보이고 있다.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산업사회의 환경이기에 하회마을 목판화는 자연과 인문의 멜로디를 더욱 보여주려고 하였는가 싶다.

김억 국토목판화 ‘안동 하회마을’. 90.0cm×179.0cm. 한지에 목판. 에디션 12. 김억 국토목판화는 전심전력으로 방방곡곡의 국토를 샅샅이 찾아다니며 그의 손짓발짓 예술혼을 모두 동원하여 창작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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