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에는 익살꾼으로 이름난 사람이 살았는데, 그가 바로 권달삼이다. 봉이 김선달이나 정수동 못지않은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사람을 웃겼다. ‘산에는 산삼, 바다에는 해삼, 육지에는 달삼’이라고 할 정도로 포항 지방에서는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권달삼도 김선달처럼 전국 방방곡곡을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나보다. 한번 여행을 갔다 오면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아무튼 사람들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말솜씨가 좋았다는 것이다.
권달삼은 만주에 꼭 가고 싶었다. 우리 땅이라면 골골샅샅이 다녀보았지만 만주는 아직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만주로 돈 벌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놋그릇을 잔뜩 짊어지고 말이다. 놋그릇 장사를 하러 만주로 떠났냐고? 아니다. 그 당시 흥해에서 놋그릇이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주로 가는 길에 놋그릇을 팔아 노잣돈에 보탤 생각이었다. 집에서는 돈 한 푼 얻어오지 못했으니까.
권달삼은 워낙 말을 잘해 함경도 청진에 닿을 때까지 갖고 있던 놋그릇은 거의 다 팔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요강 몇 개뿐이었다. ‘다른 건 다 팔렸는데 놋요강만 남았네. 놋요강이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힘들단 말이야. 어서 팔아치워야 할 텐데 걱정이네.’
권달삼은 날이 저물어 주막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주모는 그의 행색이 초라해서인지 다짜고짜 숙박비부터 미리 달라고 하는 것이다. 권달삼은 화가 치밀어 주모를 곯려줘야겠다고 마음먹고 놋요강을 꺼내 주모 앞에 내놓았다. 그러자 주모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어머나, 이게 무슨 그릇이에요? 굉장히 크네요?”
주모는 놋요강을 처음 봤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청진에는 놋요강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주모가 놋요강에 관심을 보이자 권달삼은 짐짓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이게 무슨 그릇인고 하니, 밥을 담는 통이에요. 금방 지은 밥을 담아 두면 잘 식지도 않고, 밥맛도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우리 고장에서는 모두 이 밥통을 사용하는 걸요.”
요강을 밥통이라 하다니! 다른 고장 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주모는 그 말을 믿는 눈치였다. 그래서 권달삼은 숙박비 대신 놋요강을 주고 주막에서 묵은 뒤 만주로 떠났다. 그리고 만주로 가는 길에 놋요강을 밥통이라 속여서 모두 팔아 버렸다. 권달삼은 놋그릇을 판 돈으로 만주 여행을 잘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함경도 청진의 주막에 또 들렀다. 그랬더니 주모가 그를 보자마자 이러는 거다.
“지난번에 주신 밥통 말이에요. 알고 봤더니….” 순간, 권달삼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크, 들통이 났구나! 오줌 누는 요강을 밥통이라 속였으니, 성이 나서 펄펄 뛰겠지. 안 되겠다. 달아나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 막 발길을 돌리려는데, 주모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릇이 커서 밥통으로는 아주 그만인데, 물그릇으로 쓰기엔 불편하더라고요. 워낙 무거워서 물을 담아 마시기엔 좀….”
이런 말을 듣고 권달삼이 어디 가만히 있었겠는가.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누워 지내는 환자들은 물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그릇이 커서 물이 많이 담기니, 누워서 물을 마시기엔 더없이 좋지요. 물그릇을 살짝 기울이면 되니까요”
“어머나, 듣고 보니 그렇군요. 진작 일러 주시지.”
〈신현배 / 시인, 아동문학가〉
♠ 옛날 사람들은 산에서 함부로 오줌을 누지 않았다면서요?
옛날 사람들은 산에 갈 때는 꼭 그릇을 챙겨 가지고 갔다. 오줌이나 똥이 마려우면 그 그릇에 담아 오려고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산에는 신령이 있다고 믿었기에 산에 가서도 아무데나 함부로 오줌을 누지 않았다. 산을 더럽혔다가 신령에게 노여움을 사서 해코지를 당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신령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산 속에서는 말도 조용조용히 했다. 산삼을 캐러 산 속을 헤매는 심마니들은 늘 허리춤에 표주박을 차고 다녔다. 소변이 마려우면 이 표주박에 오줌을 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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