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1 격주간 제709호>
<4-H 역사 속으로…> 새로운 영농기술로 식량자급 이뤄

4-H회원 기술교육

<농업기계교육을 받는 4-H회원들. 농촌과 농업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4-H운동은 해방 후 낙후된 농촌의 근대화와 선진화를 이끌었다. 초창기 영농기술교육을 통해 다수확 등 식량증산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60~70년대 급격히 변화되는 농촌환경 속에서 지역농업발전을 이끌어갈 영농후계자 양성에 역점을 두고 영농의 과학화와 기계화를 촉진하기 위한 교육을 강화했다.
1960년대 농촌환경 개선을 위해 연간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4-H농공훈련은 1969년부터 1972년까지 2000여명으로 확대했다. 교육생들이 목공, 토공, 철공실기를 익혀 직접 주택을 수리하고 축사를 스스로 개량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했다.
1969년에는 농촌진흥청에 4-H중앙농업기계훈련소가 설치돼 1973년까지 연간 59~210명씩 총 726명에게 농기계 운전, 조작, 정비 등의 교육을 실시해 영농의 과학화와 농업기계화를 촉진하게 되었다. 아울러 1974년까지 도와 군에 141개소의 지방4-H농공훈련장을 확대 개설해 연간 1670~2780여명의 중견4-H회원들에게 각종 농기계 취급, 운전조작기술훈련을 본격 실시했다.
특히 1969년부터 충남 천원군 직산면에 중앙단위 4-H연수농장을 설치해 45명씩 1년간 농가단위 자영입주경영형태로 전문농업경영인을 양성했다. 1971년부터는 각 도단위에 4-H연수농장을 확대 설치해 1971년에 358명, 1972년에 790명의 전문핵심농가를 육성하게 되었다.
중견4-H회원들에게 외국의 선진영농기술을 습득토록 하기 위해 농촌진흥청, 한미재단 공동으로 한미농업연수훈련을 실시해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매년 80여명씩 총 246명에게 2년간 전문작목별로 미국농장에서 연수토록 했다.
1960년부터 시작된 4-H국내기술훈련은 4-H독농가농장입주훈련을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매년 500명씩 실시하다가 1975년부터는 연 1000명 이상으로 확대 실시해 독농가의 영농철학과 경영능력을 직접 체험, 습득토록 해 상업적 영농에 대한 자신감을 길러주었다.
1964년부터 실시돼 온 한미재단4-H농장훈련은 1979년까지 매년 200명 이상 남녀4-H회원을 대상으로 축산과 생활개선기술습득훈련을 가졌다.
이처럼 4-H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영농교육이 다양하게 실시돼 새로운 영농기술을 보급함으로써 식량증산과 농촌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농촌을 지키며 땀 흘린 보람으로 보릿고개란 아픈 낱말을 없애고 식량의 자급을 이루는데 4-H회원들이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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