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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 목판화:서산 용현계곡에 있는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 용현자연휴양림을 꼼꼼하게 목각해 놓고 있다.> |
서산 마애삼존불 -김억 국토목판화 읽기 ①
박태순 / 소설가
충청남도 서해안지역을 어째서 내포(內浦)지방이라 하는가. 이중환의 ‘택리지’는 가야산(678m)을 한가운데로 하여 서해안 10개 고을을 ‘내포지방’이라 부른다 하였는데 간만의 차이가 큰 리아스식 해안을 형성하고 있는 까닭에 내륙 깊숙이까지 포구가 들어와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로 당진 태안, 서산, 예산, 홍성 등지에는 특히 문화기행, 역사기행 답사 인파들이 몰려들고 있다. 가로림만, 천수만, 적돌만과 안면도 일대의 바다와 갯벌과 습지와 사구(砂丘)는 다양하기 그지없는 해양성 문화경관을 보여준다. 내포지방은 국내유일의 ‘해안국립공원’ 지역을 이루고 있는데 다도해와 한려수도 등의 ‘해상공원’과 비교해볼 필요도 있겠다.
‘황해문화권’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시대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거쳐 가면서 내포지방은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해상교역의 센터를 이루어오고 있었다. 당진(唐津)이란 고을 명칭 자체가 당나라 무역의 항구로서 번성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는데, 오늘의 당진만과 평택만 일대가 거대 항만기지로 조성되고 있음이 우연치 않다.
‘백제의 미소’라는 키워드가 내포지방 역사기행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되고 있다. 백제는 서기 475년에 한강 위례성에서 금강 웅진(곰나루)으로 천도하게 되지만 이로부터 ‘웅진백제’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다. 대륙성국가인 고구려와는 달리 백제는 해양성국가로 웅비하게 되는데 이 당시의 문화유적과 유산들이 참으로 찬연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내포지방 나름의 문화역사가 ‘백제의 미소’의 특성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국보 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은 태안마애삼존불과 예산 봉산면 화전리의 사면석불(일명 사방불) 등과 함께 살펴보아야 하겠는데 과연 세계의 다른 어느 곳에서 이러한 미소의 미술 조각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인가. 백제 무령왕과 성왕 시대에 내포지방의 서해는 서양의 에게 해나 아드리아 해처럼 동아시아미술의 발흥지를 이루고 있었다.
김억 화백의 ‘서산마애삼존불’은 가로 32cm, 세로 130cm 크기의 목판화인데 이 그림을 새록새록 읽어보게 한다. 오늘의 여행자는 누구나 다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찍게 되지만, 이 목판화와 같은 앵글을 잡아볼 수는 도저히 없다. 거대화면구성의 이 목판화는 마애삼존불 자체보다는 이 삼존불이 위치하는 곳의 공간성, 장소성, 풍경성을 꼼꼼하게 담아내고 있는데 무엇 때문일까.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에는 고풍저수지가 있어 이로부터 용현계곡의 계류로 들어가게 되는데 김억 목판화는 가야산의 북녘 산록이 되는 이 골짜기 전체를 판각하여 돋을새김으로 새겨놓고 있다. 화가는 일반 역사기행자들과는 다른 안목과 관점을 제출해보고 싶어한 것일까. 삼존불의 구체적 조각미술성의 찬탄에 앞서 용현계곡 전체의 빼어난 국토미학부터 챙겨보라고 권유하는 듯하다. 이 계곡에는 삼존불만 아니라 당간지주 등의 유적을 남겨놓고 있는 보원사지와 그 위쪽으로 용현자연휴양림을 갈무리하고 있고, 인근에는 개심사와 같은 유서 깊은 사찰이 있기도 하다. 김억 화백의 목판화를 또 하나의 우주화면으로 삼아 백제의 미소를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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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미소:서산마애삼존불은 고달픈 현대인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보내주려 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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